1-5. 엄마의 탄생
광자 씨는 한약을 먹다가 대뜸 이상한 말을 내뱉었다.
“나 새로운 걸 좀 배워볼까?”
광자 씨는 김이 폴폴 나는 한약을 들고 거실로 걸어오며 말했다.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둘째는 슬금슬금 소파 끝으로 자리를 이동했다. 힐끔 쳐다보며 오른손을 뻗어 그녀에게 더 이상 다가오지 말 것을 표현했다. 광자 씨는 입이 샐쭉 나왔다. 또다시 주름 진 눈이 빨개졌다. 둘 째는 하는 수 없이 자세를 고쳐 앉았다.
“뭐를 배우고 싶은데?”
광자 씨는 어린아이처럼 금세 활짝 웃으며 나에게 바짝 다가와 앉았다. 진한 한약 냄새가 풍겼다.
“독서모임! 책을 읽으면 심신 안정에 좋다고 하던데”
“책 읽는 건 좋지! 근데 어디서 하게?”
“문화센터에서 하더라고. 신청해 볼까?”
광자 씨의 말 뜻은 둘 째에게 신청해 달라는 뜻이었다. 광자 씨는 인터넷이나 휴대전화와 같은 전자기기를 잘 다루지 못했다. 평소였다면 ‘혼자서 이런 것도 할 줄 알아야지’라고 말했을 테지만 광자 씨 손에 들린 한약의 약빨이 들라면 아직 멀었다는 생각에 고개를 무겁게 끄덕였다.
“엄마 하고 싶은 거 다 해”
광자 씨는 소녀같이 방긋 웃으며 휴대전화를 가져와 나에게 줬다. 3년 전 연희 씨에게 처음으로 받은 핸드폰 케이스가 여전히 끼워져져 있었다. 무겁고 불편하다며 불평했지만 그걸 3년이나 끼고 있는 광자 씨가 참으로 대단해 보였다. 둘째는 휴대전화로 사이트에 들어가 신청을 하면서 광자 씨에게 물었다.
“광자 씨는 읽고 싶은 책이 있어?”
서른 살이 넘으면서 생긴 새로운 버릇이었다. 뭐랄까. 어렸을 때 선명하게 기억하기 시작한 광자 씨의 나이가 딱 서른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광자 씨의 서른을 보다 보면 엄마의 젊은 시절이 겹쳐 보였다. 그래서 가끔은 여자처럼 이름을 불러주고 싶었다. 광자 씨는 꽤 좋아하는 것 같았다.
“나는 손자병법을 읽어보고 싶어”
“뭐? 유튜브에서 봤어?”
둘째는 광자 씨 입에서 튀어나온 책 이름을 계속 곱씹어 봤다. 광자 씨는 역시나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매일 낮이고 밤이고 소파에 누워 유튜브 보는 광자 씨를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둘째는 궁금해서 광자 씨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물었다.
“어떤 내용을 봤길래?”
“적을 알고 나를 알면 이길 수 있다잖아”
“누굴 그렇게 이기고 싶은데?”
“이 씨 집안사람들”
광자 씨는 여전히 이 씨 집안사람들에 대한 감정이 뭉쳐있는 듯 보였다. 둘째는 어이가 없어서 코웃음이 나왔다. 광자 씨는 도대체 무엇을 그리 이기고 싶은 걸까. 하지만 정말로 예상치 못한 일은 광자 씨가 독서모임에 손자병법을 들고 간 게 아니었다. 독서모임을 3번 정도 나간 뒤, 손자병법은 식탁 구석에 방치되었지만 대신 더 엄청난 일을 저지르고 왔다.
“여러분, 저 개명하기로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