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써야만 하는 사람

by 슬로
글쓰기를 좋아한다면, 이유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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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등학교 때, 공지영 작가의 <즐거운 나의 집>을 읽고 소설가가 되겠다 결심했다. 왜 하필 그때 소설가가 되고 싶었는지 오랫동안 이유를 추척해왔다. 크게 두 가지가 있다. ( + 게다가, 최근 한 가지를 더 발견했다)


1.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사람

글쓰기는 표현 수단 중 하나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사람은 자신의 욕구를 표현하고 싶을 때 글을 쓴다. 누군가는 노래를 부르거나 말을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중에서도 글쓰기가 나에게 잘 맞는 표현 수단이었던 것이다.


<즐거운 나의 집>은 공지영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다. 픽션이지만 그녀의 개인사가 많이 담긴 소설이다. 자신의 개인서사를 소설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온 것이었다. 나는 평생을 거쳐 나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사람이었다.


2. 멋진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

글쓰기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다.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게 목적이라면 소설보다 에세이가 훨씬 잘 맞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에세이스트가 아닌 소설가를 꿈꾸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이야기'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을 좋아하고, 동경하며,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3. 글쓰기로 치유에 이르는 사람

최근, 첫 번째 단편 소설 습작을 끝내며 깨달은 것이 생겼다. 그토록 나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이유를 찾은 것이다. 내가 썼던 소설에는 내가 나오지 않는다. 이름도, 상황도, 사연도 전혀 다른 주인공이 나온다. 그러나, 그 주인공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소설을 이끄는 중심 사건)는 나의 문제로부터 시작되었음을 깨닫는다.


소설 쓰는 과정은 엄청나게 괴롭다. 끙끙 거리며 답을 찾으려 애쓴다. 주인공에 대해 끝없이 성찰하고 생각하고 사유한다. 그 어려운 과정을 결국 끝까지 해내는 건 주인공을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 주인공이 가지고 있는 나의 문제를 풀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글쓰기는 치유과정이다


내가 <즐거운 나의 집>을 보고 나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건, 해결하고 싶은 나의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소설을 쓰면서 그 문제들을 하나씩 꺼내서 만져보고 있다. 영원히 풀리지 않고 풀지 못했던 난제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하나의 방향을 결국 찾아내는 것이다.


소설에 목표는 주인공이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다. 그 문제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나는 첫 습작소설을 쓴 후, 주인공이 겪는 나의 문제로부터 자유로워짐을 경험했다.


나는 목표지향적인 사람이었다. 그래서 단편소설을 쓰는 과정은 나에게 굉장히 비효율적으로 느껴졌다. 3개월에 걸쳐 10페이지 정도 되는 단편 소설을 하나 완성하고 똑같이 퇴고 3개월을 거친다. 그러면 반년 만에 고작 단편소설 하나 쓰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 시간을 통해 얻은 건 단편 소설 하나가 아니었다. 그 소설을 쓰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 문제에 직면하고 풀어냈다. 나는 비로소 소설을 쓸 수 있는 태도를 가진 습작생으로 거듭났다.


드디어, 천천히 차분하게 소설을 쓸 준비가 되었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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