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요란하지만 복스러운 인생

by 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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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는 단 한 번도 광자 씨 손아귀에 잡힌 적이 없었다. 첫째는 예상 가능한 인생을 살지 않았다. 첫째는 중학교 때 첫 외박을 했다. 광자 씨는 현대 여성이 되고 싶었고, 개방적인 어머니 상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친구 집에서 파자마 파티를 한다고 했을 때, 흔쾌히 허락을 해주었다. 그리고 친히 첫째를 친구 집까지 데려다주고 인사까지 하고 왔다. 하지만, 첫째는 언제나 광자 씨를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친구 집에서 자고 오겠다는 다짐을 너무 빨리 해서가 아니었다.


첫째는 그다음 날 친구 집에 있던 똥개 한 마리를 데려왔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엄마, 얘 이름이 말자래. 웃기지?”

광자 씨는 의중을 알 수 없어 현관문 앞에서 꼬리를 흔드는 커다란 똥개를 막고 서서 물었다.

“이 개는 뭐야? 어디서 데려왔어?”

“친구가 똥개 귀여우면 데려가 키우래서 데려왔지”

“그게 무슨.. 친구집 다시 가자”

“엄마, 말자가 말이야. 집이 자기 몸보다 작더라. 불쌍해서 데려왔어. 나도 작은 침대 써봐서 알아. 그거 힘든 거야”


결국, 말자는 우리 집 똥개가 되었다. 친구 집보다 반은 더 작은 우리 집에서 살게 되었다. 동물 털 알레르기가 있던 연희 씨는 매일 재채기를 하며 화를 냈다. 가끔은 말자를 의도적으로 발로 툭 차고 지나갔다. 하지만 그럼에도 첫째는 말자를 보며 불쌍하다 말하지 않았다. 거실 베란다 전체가 말자 집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첫째는 자신의 공간이 곧 존중의 크기로 받아들이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첫째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광자 씨였다. 광자 씨는 평생 자신의 공간이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첫째는 진심으로 말자보다 광자가 더 불쌍한 인생이라 느꼈을 것이었다. 다만, 광자 씨는 다행히도 그걸 평생 모르고 살았다.


첫째는 그 뒤로도 별 볼일 없지만 요란한 짓을 하고 다녔다. 고등학교 때는 당구에 빠져 오토바이 타는 학교 선배들과 어울려 놀았다. 그러나, 첫째가 그들과 당구를 치며 즐긴 건 술이나 담배가 아니라 우유와 찰보리빵이었다. 첫째는 시내에서 가장 오래된 당구장에 가면 주인아저씨가 만들어서 파는 찰보리빵을 좋아했다. 그녀가 그곳에 가는 이유는 그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광자 씨가 그걸 알리 없었다. 그래서 광자 씨는 첫째가 말자를 데려온 순간부터 평생을 첫째에 요란함에 부산스럽게 반응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첫째는 광자 씨보다 성공한 여성이 되었다. 우연히 실수로 길에서 만난 남자와 사랑에 빠졌는데 하필이면 건실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흘러가는 대로 목적 없이 살던 첫째에게 지도까지 펼쳐 길 찾는 방법을 알려주는 친절한 구원자였다. 첫 째는 그 남자의 손을 잡고 차분하게 길을 걸었다. 그리고, 광자 씨는 있는지도 몰랐던 길을 찾아냈다. 그 길 끝도 아직은 알 수 없었으나 적어도 누군가의 손을 잡고 가는 길도 있다는 걸 광자 씨는 그때 알았다.


항상 첫째는 복스러운 사람이었다. 말자를 데려왔던 순간에도, 찰보리빵을 먹던 순간에도, 그리고 우연한 만남에 인생을 걸었던 순간에도 세상은 그녀 편이었다. 광자 씨가 출산 후 자신과 같은 인생을 살까 봐 흘렸던 눈물이 무색할 만큼 첫째의 인생은 늘 꽃길이었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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