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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Feb 12. 2024

스스로 백수를 선택하기

1-4. 0에 가까워지기


나는 불안해서 일을 그만둘 수가 없어.

  지인 생일 파티에서 친한 동생을 3개월 만에 만났다. 일을 하느라 바쁘게 살다 보니 가까운 사이에도 보는 게 쉽지가 않았다. 동생은 예전보다 눈에 봐도 얼굴이 퉁퉁 부어 있었다. 괜찮냐고 물어보자 스케줄 근무로 밤낮이 뒤죽박죽 되면서 불면증을 달고 산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동생은 백수인 나에게 부러움보다는 정말 궁금하다는 듯이 이런 질문을 했다. "근데 백수면 뭐 해? 할 게 있어?" 동생은 자기는 일을 안 하면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일을 한 번도 쉬어본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난 동생에 그런 이야기에 적극 공감하는 사람이었다. 건강만 회복되면 바로 이직해서 일할 생각이었으니까. 하지만 현재는 이직을 과감히 포기했다. 좀 더 명확히 말하자면 잠시 포기해 보기로 했다.


  심리 상담을 끝낼 무렵쯤, 건강이 거의 회복되었지만 난 노동자의 삶을 잠시 내려놓았다. 주변에서는 "나이를 생각해야지", "젤 무서운 게 경력단절이야", "원래 일은 다 힘든 거야"라면서 실업자로 전락하려는 나를 안타까워하며 한 마디씩 넌지시 건넸다. 그래도 단호한 나의 태도에 그다음 질문은 늘 공통적이었다. "그럼 뭐 하려고? 그냥 쉴라고?"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나 책도 읽고 글도 쓰고 비전도 찾고 그럴라고" 그리고 그다음 반응도 대부분 비슷했다. 조언을 포기한다는 듯한 태도와 알아서 하라는 듯한 체념의 표정으로. 서른이 넘으니 좋은 게 하 나 생겼다. 뒤에서 욕할지언정 앞에선 나의 일에 크게 간섭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20대 때는 '아직 어려서 내가 좀 알려줘야겠다' 싶은 심정이었다면 30대 때는 '별나네 진짜'라는 심정이 아닐까. 


  어쨌든 난 별나게도 이직 대신 내가 가장 좋아했던 '읽고 쓰는'행위에 집중하기로 다짐했다. 우리는 나이가 들면서 책임져야 할 것들의 무게가 무거워지기 때문에 생계를 위해 살게 된다는 걸 안다. 그래서 난 생계를 위해서가 아니라 꿈을 위해서 살아볼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도 알고 있다. 그러니 나에게는 생계를 위해 일하는 것보다 하고 싶은 걸 해보는 것이 더 급하고 간절한 일이다. 후회 없는 인생이란 되지 못한 인생이 아니라 시도조차 해보지 않은 인생이니까. 


진정한 실용은 자신의 삶에 유용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힘이다.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 中


  쓸모를 잃은 인간으로 살기 위해서 필요한 건 스스로의 쓸모를 스스로가 주는 것밖엔 없다. 사회에서 한 직장에 소속되면 사회에서 그 사람에게 쓸모를 정해주지만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흔들리게 된다. 하지만 진정한 쓸모와 가치는 사회가 아닌 내가 인정해 주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걸 깨달았기에 용기를 낼 수 있게 되었다. 내가 평생 되고 싶지 않아서 도망 다녔던 어머니의 모습은 '사회적 쓸모를 잃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 쓸모가 전부라는 생각을 버리지 않는다면 난 똑같은 삶을 반복할 것이다. 그리고 늘 그랬듯이 어머니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을 부정하며 가치 없다 결론 내릴 것이다. 백수로 살아보고자 하는 나의 시도는 이런 나의 편견과 강박으로부터의 도망가기 위함이다. 세상을 조금 다른 시선으로 보고자 하는 노력이며, 영원히 행복하게 일하며 살기 위한 도전이다. 난 일을 사랑하며 살고 싶다.


 '실용적'인지를 논할 때 중요한 건 '이익'이다, 과연 이익이 되는 가이다. 실용적인 삶을 살기 위한 도서와 조언과 훈계는 조금만 눈을 돌려도 쉽게 찾거나 얻을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실용적인 삶'에 함정은 당장에 '이익'과 '결과'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나는 효율적이고 실용적인 걸 누구보다 선호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약속 하나를 잡아도 나에게 '이익'이 되는 가를 먼저 따지고 효율을 생각하며 계획적으로 움직인다. 그렇기에 나에게 '백수'라는 선택은 '실용'과 멀다고 생각했다. 

  남들과 다르지 않은 '실용'을 따라 살았을 때 내가 얻은 건 대게는 '돈'이었다. 아이러니한 건, 그렇게 5년 가까이 돈을 차곡차곡 꽤 모았지만 난 그 돈을 '실용적'으로 활용하지 못했다. 모은 돈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이 없었던 것이다. 돈을 모으며 실용적으로 살고 있다 생각했던 지난 삶은 사실 생각보다 실용적이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살았던 '실용적인 삶'은 남들이 사는 대부분의 삶을 흉내 낸 것에 불과했다. 


 서른이 넘어서 '백수'를 선택한 것은 적어도 나에게는 '실용'적인 선택이다. 당장 집을 한 채 살만큼 돈을 많이 모은 것도 아니고, 평생 먹고살 만큼 돈을 많이 벌어둔 것도 아니지만 나에게 지금은 '돈을 버는 것'보다 '하고 싶은 걸 찾는 것'이 실용적이다. 드디어 모아 둔 돈을 실용적으로 사용할 쓸모를 찾은 것이다. 나는 실용적으로 살아보고자 '백수'를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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