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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Feb 26. 2024

입수 전 준비운동은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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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수 전 준비운동은 필수"

 수영을 하기 전, 반드시 준비운동이 필요하다. 몸에게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이제부터 네가 숨 쉬던 공간으로부터 벗어나 부아가 치밀 만큼 압력이 가해질 공간으로 빠트릴 건데 각오라 하는 뜻이다. 숨 쉬듯 자연스럽다는 말처럼 의식 없이도 가능하던 작은 행동과 말 그대로 '숨을 쉬는'일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아연실색할 만큼 불편하고 불안한 공간으로의 초대인 것이다. 


 나에게 '백수'가 된다는 건 '숨쉬기'부터 다시 배우는 과정이었다. 들숨날숨을 전담하는 무의식에게 끝도 없이 노크를 하는 일이었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질문들을 매일같이 퍼붓는 일상을 보내는 것이었다. 

내가 무의식적으로 한 행동을 의식에게 물어보는 낯선 시도였다. 계속해서 따지는 것이다. 그래서 너는 왜 지금 이러고 있냐고..라는 식에 약간에 원망과 질책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그 끝에는 반드시 빼먹지 않고 물었다. 그러니까.. 너는 어떤 사람이냐고. 



"잠수를 위한 장비용품"

 오랫동안 낯선 물속에 머물기 위해선 장비가 필요하다. 앞을 보기 위한 마스크와 숨을 쉬기 위한 스노클, 그리고 멀리 나아가기 위한 오리발이 필요하다. 나는 '백수'라는 세계에  오래 머물기 위해 장비를 준비했다. 멀리 내다보기 위한 책과 숨을 쉬게 해 줄 글쓰기와 멀리 나아가기 위한 산책. 삼박자가 맞으니 초보도 수영을 즐길 수 있게 되듯, 나에게도 '백수'의 삶은 꽤 버틸만했다.  


  내가 머무는 '방' 한켠에 나를 제한시켜 놓을 수 없었다. 세월과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독서를 통해 눈앞에 세상을 찬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마음에 드는 조개나 진주와 같이 귀한 걸 발견하고 나면 그걸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한 '기록'에 과정을 거쳤다. 그리고는 한 자리에 오래 머물다 다리 감각이 사라지기 시작하면 발을 뻗어 나아가듯 밖으로 나가서 무작정 움직이는 행동을 실천했다. 뭉쳤던 다리를 털기 위해, 무엇이든 고이지 않고 얽히지 않고 꼬이지 않게 하기 위해선 가끔은 주기적으로 몸을 실제로 굴리는 작업이 필요했다. 


"보물을 발견하기"

  장비를 착용하고 오랫동안 '숨쉬기' 불가능한 곳에서 '숨'을 쉬며 유유히 수영을 하다 보면 발견하게 된다. 남들은 쉽게 발견하지 못했던 무언가를. 작은 조개껍질일지라도. 나의 눈에 띈다면 그때부터는 나에게로 발굴되어 의미를 갖게 된다. 발굴의 과정을 거치면서 다양한 것들을 줍다가 이내는 새로운 생각으로 뻗어나간다. 이걸로 무언가를 만들어볼까. 목걸이여도 되고, 그림에 붙여도 되고, 갈아서 고운 가루로 만들어도 된다. 그제야 수면 위로 다시 올라와 '장비'를 잠시 벗어두고 뜨거운 모래사장에서 열심히 다듬어 본다.

  

  오랫동안 유유자적 수영을 하다가 발견한 조개로 목걸이를 하나 만들어내는 작업을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 몇 개월동안 나는 잠수 상태였다. 백수가 된 후 사람들로부터 거리를 두고 깊은 수면 아래로 잠수를 했다. 조개 목걸이를 만들 조개를 발견할 때까지. 읽고 쓰고 걷는 나의 활동은 이력서에 한 줄도 끼워 넣을 수 없을만큼 이 사회에서 정의할 수 없는 활동명이지만 그 후에 적게 될 한 줄은 적어도 나에게는 쏙 마음에 들 것을 확신했다. 


  몇 개월 동안 이어진 수면 아래 생활로 만들어낸 나의 소중한 조개 목걸이는 아직 쓸모가 없어 방 한켠 서랍장 안에 박혀있다. 그러나 난 알고 있다. 서랍장에 직접 발굴해서 만든 조개목걸이가 있는 건 나뿐이라는 걸. 나만 가진 유일한 보물이라는 것을. 나만의 조개 목걸이를 빛나게 해 줄 여행을 또다시 떠날 것이다. 이 또한 이력서에 한 줄로 적지 못할 난처한 활동명을 갖게 되더라도 일단은 만들었으니 세상에 보여줄 날만을 손꼽아 기대하고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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