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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Mar 04. 2024

나는 실패를 계획한다.

2-1. 쓸모를 위한 물음


  퇴사한 지 3개월이 지났을 무렵, 나는 '멘토링수업'을 받게 되었다. 건강 이상으로 의도치 않게 퇴사를하게 되었고, 몸이 회복되면 바로 '이직'을 할 예정이었으나 내 마음속에 풀리지 않는 '미래'에 대한 고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늦은 나이지만 '이직'대신 백수 신분으로 '진로교육'에 참여하게 되었다. 


  수업을 듣기 위해 '면접'을 진행할 때의 일이다. 나는 스스로를 이렇게 설명했다. "마케터지만 사실 오랜 꿈은 작가예요" 그러자 멘토님은 날카롭게 질문을 던졌다. "작가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으시죠?" 나는 할 말이 없어서 현재 하고 있지는 않지만 과거에 조금이나마 시도해 봤던 나의 노력들을 구차하게 읊어보았다. "뭐... 습작 소설도 몇 편 써보고, 취업 전에 예대를 다시 진학하기도 했었어요. (결국 자퇴했지만요) 그 뒤로 글쓰기를 멈추진 않았지만 일이 바쁘다 보니 자연스럽게 취미로만 머무르게 되었네요.." 그러자 멘토님이 웃으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금 본인이 무엇을 해야 할지 가장 잘 알 것 같은데요?" 



  계획 없는 목표는 쓸모가 없다

"우리가 그동안 '계획'이라는 이름으로 세워온 게 사실은 계획이 아닌, 목표였을지도 모른다" -컨셉진 中


  나는 늘 새해가 되면 다이어리를 산다. 1월 1일부터 제대로 써보고 싶은 마음에 미리부터 다이어리를 장만하고 몇 번이고 한 해 계획을 철저하게 세운다. 월별로 무엇을 해야 할지까지 정한 후 한 해를 뿌듯한 마음으로 맞이한다. 아직 이룬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마치 진짜로 다이어리에 적은 계획처럼 다 될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언제나 변함없이 다이어리는 보통 1월을 넘어가지 못한다.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세운 '계획'은 '실현 가능성'이 너무 낮아 계속 실패하게 된다는 것이다. 나는 작가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계획'을 세운 것이 아니었다. 나의 상황과 수준은 고려하지 않은 채 작가에 도달할 수 있는 '목표'를 '계획'처럼 보이게 변형한 것뿐이었다. 지금 당장 매일 글을 쓸 수 있는 '쓰기 근육'이 없음에도 매일 글을 쓰겠다는 계획을 세우게 되는 꼴이었다. 


나는 실패를 계획했다


  나는 멘토링 수업을 23년 11월부터 받기 시작했다. 이제는 진짜로 하고자 하는 '작가'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이제 막 한 발자국을 내민 것이다. 멋지게 말하면 '꿈을 꾸는 백수'가 된 것이다.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도 끝내주는 '계획'으로 하루도 허비하고 싶지가 않았다. 직장인들에게는 안 바쁠 때면 회사에서 살짝 여유를 좀 부리거나, 퇴근 후 동료 또는 지인들과 시원한 맥주 한 잔을 하거나, 주말에는 친구나 연인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도 '월급'과 '커리어'라는 보상이 주어지기에 괜찮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 시선으로 '꿈을 꾸는 백수'는 '놀고먹는 실업자'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나에게 주어진 24시간 모두 다 쏟아부어 하루빨리 '꿈을 꾸는 백수'에서 '꿈을 이룬 백수'가 되고자 했다.


  나의 열정은 초반에 '과유불급'에 이르게 되었다. 하루빨리 '작가'가 되기 위해 언어공부라는 걸 건너뛰고 글쓰기 공모전에 나가는 꼴이 돼버렸다. 나의 모든 계획은 내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계획'이 아니라 이루고 싶은 '목표'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래서 알파벳을 배워야 하는 위치에서 당장 결과물을 받을 수 있는 글쓰기 활동에 매달리게 되었다. 


  다이어리를 쓸 때 나는 펜으로 꾹꾹 눌러쓴다. 그러나 언제나 인생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아서 수정을 해야 할 순간이 찾아온다. 공모전을 준비하기 계획을 언어 공부하기라는 계획으로 바꿔야 하듯이 말이다. 완벽에 가까운 오늘의 계획이 살짝이라도 삐끗하게 되면 펜으로 찍찍 긋고 구석에다가 새로운 계획으로 수정해야 하는 것처럼 '목표'를 향한 '계획'은 늘 실패와 수정을 반복하는 조금은 번잡스러운 것이다. 


  "지금은 실패를 배워야 할 시간이다. 모든 순간이 완벽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하지 않으면 어떠한 것도 이룰 없다" - 멘토링 수업 中


  멘토링 수업을 들으면서 나는 '작가'가 되기 위해 첫 번째 '계획'을 실천하고 있다. 그건 바로 '책을 출판하기'가 아니라 '실패하기'다. 면담을 하던 때로 다시 한번 회상해 보자면 이런 이야기가 오갔었다. "작가가 되기 위해 무엇에 실패했다고 생각하나요?" 난 그 질문에 수업을 받기 전까지는 실패의 원인이 '재능 부족'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멘토링 수업을 들으면서 '실패를 배우지 못해서 포기해 버린 것'으로 생각이 변화되었다. 

  

  모든 시작은 그렇다. 운동에서도 되는 동작이 아닌 안 되는 동작을 될 때까지 하는 이유는 그래야 그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새롭게 시작하고자 하는 '작가'의 시작점에서 내가 해야 할 건 당장에 성과내기가 아닌 잘 안 되는 '글쓰기' 훈련을 될 때까지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건 수없이 반복될 실패일 것이다. 지금 내가 해야 할 '계획'은 '실패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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