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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Mar 11. 2024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2-2. 쓸모를 위한 물음



 두 개의 페르소나


  나는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다. 평생 한 직장을 성실히 다니 아버지, 가정을 위해 헌신했던 어머니. 한 살 터울에 친구 같은 언니.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은 모르고 자랐으며, 가정 불화를 겪은 적이 없을 정도로 아주 튼튼한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자랐다. 남들과 조금 다른 점이었다면 막내딸이었던 내가 '아픈 손가락'이었다는 것 한 가지. 하지만 그렇다고 나의 삶 또한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조금은 변두리였을지라도, 평범함에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연약한 몸 때문에 남들보다는 더디고 느렸을 뿐 평범하게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도 했다.  


  그러나 나는 늘 '평범함' 속에서 알 수 없는 '불편함'을 느꼈다. 가정을 위해 자신의 '일'을 떠나 '인생'까지 포기하는 어머니의 삶에 '불편함'을 느꼈으며, 가진 자본에 의해 성공이 결정되는 사회를 비난하는 나의 주장을 틀렸다고 정의내리는 학교에 '답답함'을 느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와 같이 '환자와 학생' 두 가지 페르소나를 가진 친구가 없는 사회에 '이상함'을 느꼈다. 학교에는 '평범한 아이'만 있었으며 병원에는 '아픈 아이'만 있었다. 나는 오랫동안 두 가지의 사회가 만나는 걸 보지 못했다. 나처럼 아프면서 학교를 다니는 학생도 없었고, 학교 다니면서 아픈 아이도 없었다.



  불행과 행복으로는 내 삶을 정의할 수 없어.

  학창 시절, 나는 매년 새 학기가 되면 담임 선생님과 가장 먼저 면담을 하는 학생이었다. 그중에서 긴 생머리에 똑 부러지던 국어 선생님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 선생님은 나를 쓱 한 번 훑어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밑에 보고 살아. 그럼 행복해질 거야" 남의 불행을 빌미로 나의 행복을 빌라선생님에 말을 오랫동안 곱씹어 보았다. 그리고 나보다 불행한 사람은 누구일까를 생각해 보았다. 나보다 아파서 학교를 다니지 못하는 아이들일까. 장애가 있어서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하는 아이들일까. 가정 폭력에 노출되어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보호를 받지 못하는 아이들일까.


  나는 선생님에 말씀대로 살지 못했다. 선생님에 말씀이 틀려서가 아니라 나보다 불행한 사람을 못 찾았기 때문이었다. '행복'과 '불행'을 어떻게 정의 내려야 할지 모르겠어서 포기했다. 친구에 '불행'만을 쫓다 보니 희한하게도 그들의 '불행'보다 나의 '불행'이 더 잘 보여서 그만둬버렸다. 대신, 내가 찾는 방법은  '무소의 뿔'을 갖는 것이었다. 왠지 단단한 뿔이 있다면 '불행'도 '행복'도 연연하지 않고 온전히 나로서 존재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누구도 나의 삶을 '행복'과 '불행' 두 가지의 측면에서 함부로 판단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나는 책을 읽을 때 '작품'만큼이나 '작가'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그게 '소설'일지라도 그 속에서 '작가'를 찾아내는 것을 좋아한다. 고등학교 시절, 처음으로 좋아했던 '소설가'이자 '어른'이 공지영 작가였다. 그녀는 겉으로 보기에는 엘리트 코스를 밟은 듯한 '명품 작가'처럼 보였으나 속내는 좀 달랐음을 '작품'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그녀가 사실은 아이를 홀로 키우는 생계형 작가였음을 알 게 된 후, 그럼에도 사회로부터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메시지를 전달할 배짱이 있음에 그녀의 작품은 '진짜'처럼 느껴졌다. 거짓과 진실이 섞이는 소설에서 '사실'을 놓치지 않으려는 그녀의 '투지'를 나는 사랑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마음속에는 깊은 뿌리 하나가 생겼다. 전장에 나가서 직접 싸우는 '전사'는 아니어도 '글'을 무기로 써보겠다는 결단은 깊은 뿌리를 타고 싹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던 것들에 대해 그녀처럼 '진실과 거짓'에 섞어서 흘려보내보고 싶었다. 그 안에서 나와 같은 또 한 명에 전사가 나타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내가 생각하는 '사실'이 '오류와 오해'로 남을지라도 내가 태어난 해에 쓰인 작품을 30년이 넘은 지금 나에게 깊은 뿌리가 되어준 것처럼 반드시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오해'가 아닌 '사실'이 될 것이라 믿으며.


  그래서 나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길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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