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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Mar 18. 2024

인생이 쓰다면 글을 써보세요.  

2-3. 쓸모를 위한 물음 



자물쇠로 잠가 둔 일기장
photo by Unsplash

  

 어렸을 때, 나는 학교 제출용 '숙제일기'와 혼자보는 '비밀일기'를 같이 썼다. 숙제일기는 사건브리핑 같은 느낌이었다면 비밀일기는 사건에 대한 나의 견해를 과감히 드러냈다. 나는 사실과 생각을 구분하고 싶었다. 가장 큰 이유는 '나의 생각'이 부끄러워서였다. 수업 시간에 하고 싶은 말은 많았으나 수줍어서 못다 한 이야기를 '비밀일기'에 적었다. 누구에게도 보여주기 싫어서 '자물쇠'로 잠가놓기까지 했다.


  나는 늘 '정답' 맞추는 걸 어려워했다. 수학 공식이나 영어 단어의 뜻을 맞추는 것 뿐만 아니라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작품에 대한 '정답'도 포함되었다. 항상 따라오는 질문은 같았다. '다음 중 저자의 의도를 고르시오'. '정답'을 찾기 위해서는 '나의 생각'보다 '타인의 생각'을 달달달 외우는 과정을 반복했다. 그래서 '나의 생각'은 정답이라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렇기에 나의 생각들은 늘 '숙제일기'가 아닌 '비밀일기'에 머물렀다. 


비매품이 돼버린 '나의 생각'을 누구에게 팔만한 가치를 스스로 찾지 못했었다.



일기(日記)는 일기예보가 될 수 있을까
photo by Unsplash

  30대에 '결혼'이나 '진급'대신 '백수'를 선택하면서 나는 정답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정답'을 배워왔던 습관이 끊어져 버렸다. 30대에 백수로 성공하는 방법 따위의 '정답'을 찾아서 책을 읽어봐도 마땅하고 적당한 답은 없었다. 주변에는 그런 사람이 없어서 물어보지도 못했다. 그래서 나에게 남은 선택지는 하나였다. 비매품이었던 '비밀 일기장'을 꺼내는 것.  


  '나의 생각'에서 새로운 정답을 만들기 시작했다. 자물쇠를 열어서 기록들을 살펴보고, 머릿속 기억들을 들춰보면서. 발자국을 찍어놓았다면 길이 길더라도 되돌아가는 건 불가능하지 않다. 중간에 끊어진 길이 있다면 기억 속에서 길을 유추하며 발자국을 새롭게 남긴다. 연결된 길에서 '여행'을 시작한다.


일기가 일기예보가 될 수 있을까. '나의 생각'도 '정답'이 될 수 있을까.



"인생이 쓰다면 글을 써보세요.
photo by Unsplash

  나의 미래를 예측해 보고자 씀의 기록들을 이어나가고 있다. '무엇이 될 것인가'에서 벗어나서 '어떻게 살 것인가'로 관점이 바뀌기 시작했고 사회에서 정의하는 '직업'보다 '역할'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래서 '비밀 일기장'에서 찾아낸 오래되고 낡은 '작가'라는 꿈을 다르게 바꿔보기로 했다. 


  나는 늘 인생이 쓸 때마다 글을 써왔다. 하루 온종일 학교에 갇혀 있을 때도, 그러다 아파서 입원을 했을 때도, 오래 사귄 연인과 헤어졌을 때도, 가족들과 싸웠을 때도. 고통을 직면하고 삼키는 나만의 방식이었다. 오랫동안 쌓여온 씁쓸한 기록들은 그 안에서 수학 공식처럼 자신들만의 목소리를 만들어냈다. 


'작가'보다 '나만의 공식을 알려주는 사람'으로 살기로 했다. 누군가는 필요할지도 모르니. 그것을 '작가'라는 틀에 가두지 않기로 했다. 





인생이 쓰다면 글쓰기를 시작해 보라. 공식은 외우는 게 아니라 찾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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