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한국에 왔다 1

국제이사

by 지혜인

나는 호주인 여보씨와 호주에 살다가 2016년 한국으로 이사를 왔다.


아빠가 암으로 편찮으셔서 길어야 5년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한국에서 우리 가족과, 특히 아빠와 얼굴을 자주 보면 좋겠다 생각한 걸 그냥 막무가내로 저지른 사건이라 하겠다. 허허허




감사하게도 여보씨의 마음이 나와 같았기에 일단 결심을 한 이상,

1) 호주 대출금을 모두 갚는다.

2) 여보씨의 한국 비자를 받는다.


가장 현실적인 이 2가지가 해결되면 당장이라도 한국으로 이사를 갈 수 있지 싶었다.


우리는 호주에서 집을 사거나 하는 큰 대출금은 없었지만 자기개발이나 비지니스 아이디어를 나누는 회원제 세미나에 자주 다녀서 이것과 관련한 상환금액이 2-3천만 원 정도 있었다.


1년 정도 열심히 허리띠를 졸라매면 대출금 청산이 가능해 보였고 그때쯤 여보씨의 한국 체류비자(배우자비자)를 받을 수 있게 필요한 서류를 차근차근 준비했다.


그리고 2016년 추석을 일주일 앞두고 우린 드디어 한국 땅을 밟았다. 여행이 아니라 이번엔 살러.


얏호!




호주에 살면서 부모님이 편찮으실 때마다 매번 불효자인 것 같아 죄송했다.


또 20대 청춘 때 '외국에 한 번만 나가보자' 라는 생각으로 호주에 왔다가 여보씨를 만나 눌러앉은 케이스라 한국의 것들이 너무 그리웠다. 밖에 나가면 보이는 간판이 영어가 아니고 한국어라는 게, 그리고 지나가는 저 사람들의 말소리가 영어가 아니고 한국말이라는 게 얼마나 그리웠는지 모른다.


그래서 한국행을 결심하는데 심적으로 큰 고민이 없었다.


집은 어떻게 구할지,

무슨 일을 하며 살지,

그런 현실적인 문제들이 있었지만 심적으로 신난 나는 어떻게든 길이 있겠지 싶었다. (그리고 생각해 보니 어떻게든 길을 찾아 지금까지 한국에서 잘 살고 있네요. 흐미 기특해^^)




한국으로 보낸 이삿짐은 부피 큰 것 일체 없이 우체국 택배상자 큰 사이즈 6개에 살림을 추려 택배배송으로 보냈다. 컨테이너 이사? 그런 게 있는지도 몰랐고 알았어도 필요 없다 생각해 똑같이 했을 것 같다.


신혼이라고 구입했던 가구가 있었던가

물건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사는 성격이라 한국에 꼭 가져가야겠다는 것들이 없어서 짐 싸기는 오히려 더 쉬웠던 기억이 난다.


호주에 있을 때 여보씨는 집렌트비를 대신 내주는 감사한 회사에 다녔는데 덕분에 둘 밖에 없었지만 잔디마당도 넓고 거실엔 벽난로가 큰, 방 4개짜리 전원주택에 살았었다.


그때 우린 원래 있던 빈백 2개만 사용하다 보니 따로 소파가 필요한지 잘 모르겠어서 그 큰 거실에 몇 년 동안 소파도 없었다. 그렇게 뭐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안 들면 딱히 둘 다 뭘 사는 성격이 아니라 국제이사도 박스 6개로 가능했던 것 같다.


택배박스라서 배송비만 내면 됐기에 이사라고 비용이 많이 들지도 않았다. 하하하




항상 한국과 호주를 몇 년씩 오가며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다.


그게 가능하기 위해서는 특정한 곳에 출퇴근이 필요하지 않은 수입원. 이게 정답인데 그럼 무엇이 있을까 이런 생각도 늘.


그래서 재택근무부터 온라인 비지니스, 드롭쉽핑, 유튜브 가지가지 생각 안 해본 것들이 없다. 사람은 생각하는 데로 살게 된다더니 계속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까 오호 그렇게 길이 열리는 것이다!(<- 이건 진짜 맞는 말인 것 같아요!! 생각하는 데로 살게 된다!)


지금은 노트북+인터넷만 있으면 먹고사는데 지장 없는 디지털노마드로 한국에서 밴라이프를 하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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