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한국에 왔다 2

월급쟁이들이 캠핑카에서 먹고살기까지.

by 지혜인

한국에 와서는 둘이 제주도에서 영어공부방을 운영했다.


친정아빠의 암이 재발했고 이번엔 악성이라 친정 가까이로 이사를 하면서 나는 영어유치원으로, 여보씨는 영어학원으로 직장를 구했다. 하지만 돈을 벌기 위해 기계처럼 출퇴근에 몸을 싣는 일자리가 내 삶의 중심이 되는 일상은 참 견디기 힘든 노잼의 연속이었다. 삶이 삶이 아닌 것 같아 둘 다 그만두고 백수로도 한참 있었다. 인생이 재미가 없었다.


머리 말고 몸 쓰는 일이 하고 싶어 쿠팡 물류센터에서 계약직으로 1년이나 일을 했다. 너무 신났었고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물류센터에서 일하게 되어 참 감사하다는 생각까지 했다. 참 좋은 경험이었다.


개인적으로 몸 쓰는 현장일이 취향인지 참 즐거웠는데 커리어를 찾아가라는 주위의 안타까운 시선이 늘 따라다녔다. 커리어라면 영어 가르치는 일이요? 아니 저는 이게 훨씬 더 재밌어요^^ 남의 시선에 내 인생을 휘둘리고 싶지 않아 무덤덤하게 지나쳤다.


한국에 일자리 없다더니 할 일 많구먼!

그 많은 물류센터 현장직이 나는 적성인가 매일 즐겁고 재밌는 일터에 감사했다.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칠 때보다 훨씬, 정말 훨~씬 재밌었다.




그렇게 1년의 쿠팡 물류센터 계약직이 끝나고 나는 재계약을 하지 않았다. 원할 때만 골라서 물류센터 일용직으로 일하며 캠핑카에서 먹고사는 삶이 무척이나 가능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는 전셋집을 정리하고 캠핑카로 이사했다.

편의점 알바라도 하면 되겠지,

어딜 가나 단기 일자리는 많고,

몸 쓰는 일 좋아하니까,

설마 사람이 굶어 죽을까 요즘 세상에.

이런 생각으로 가득했다.


아빠가 돌아가실 때 여보씨와 내 손을 꼭 잡고 '잘 살아' 그러셨는데


인생이란 뭘까,

삶이란 뭘까,

잘 사는 게 도대체 뭘까,

이런 생각을 또 심오하게 하면서.... 백수의 시간이 흘러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번 이사도 저지른 사건에 속하지만 생각이 많아져 하고 싶은 걸 일단 넣어두고 현실에 안주하는 것을 반복하는게, 걱정이 많아지고 이것저것 무기력하게 포기하는 게, 나는 무서웠다.


원래 이런게 삶이고 아빠가 말 하던 '잘 살아' 인가

아닌 것 같은데 딱히 다른 방법은 없는 것 같으니 슬펐다는게 맞을 것 같다.


하지만 포기도 내 선택이고 나중에 내 선택을 후회한다면 '포기'를 후회하기보단 '저지른 것'을 후회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번에도 저지른 것이다.




캠핑카살이 처음에는 한국에 거주하는 미군가족들에게 한국살이 정보를 제공하는 스타트업 회사에서 일을 했다. 회사 웹사이트에 영어로 된 한국 관련 동영상과 글을 올리는 재택업무를 하며 여보씨는 월 50만 원, 나는 월 40만 원을 벌다가 반년만에 코로나로 회사 사정이 안 좋아지면서 우린 둘 다 다시 백수가 되었다.


그때는 우리 둘, 강아지 둘이 캠핑카에서 먹고사는데 고정지출이 적은 편이라 한 달 생활비가 70만 원 정도였다. 지출의 대부분은 먹는 것과 캠핑카 기름값.


한 달 100만 원을 벌면 먹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거, 사고 싶은 거 거의 다 만족되는 삶이었다. 지금은 넷이 더 늘어 총 강아지 여섯과 우리 둘이 생활하는데 한 달 생활비가 100만 원 남짓. 150이면 정말 풍족히 지낼 수 있고 200이면 부자처럼 생활할 수 있다. 허허허


그럼 부자가 되고싶어 한달에 200을 버느냐

그건 아니고 딱 먹고 살만큼만 버는게 대부분이라 부자 같은 날들은 많지 않으니 조금 구질구질할 지라도,


오늘도 나는 1.5평 우리 집에서 구질구질한 행복을 찾아 설레는 마음으로 눈을 뜬다.




'그렇게 한국에 왔다 1,2' 는 국제커플 커뮤니티에 올렸던 옛 글을 조금 수정하여 브런치에 옮긴 것입니다.


서로 국적이 다른 부부는 항상 나라 간 이사를 꿈꿉니다.

외국인 배우자를 둔, 외국에 사는 한국분들은 한국으로 역이민을 오는 상상을 하며 이게 정말 가능은 한 건지 현실적인 부분을 매우 궁금해하죠. 저 또한 매우 그러했습니다.


막상 저질러보니

실제로 적은 돈으로도 국제이사가 가능하고, 모은 돈이 별로 없지만 인생에 대해 생각한답시고 백수로도 오랜 시간을 보낼 수 있으며, 누구는 궂은 일이라 하찮게 보는 물류센터에서 일하며 많은 것을 배우기도 하더라구요.


지금은 강아지 여섯과 캠핑카에서 먹고산 지 2년이 넘었다니 오오 저도 새삼 놀랍습니다.


인생 참 알 수 없네요.

그래서 오늘이 더 신나고 재밌는 것 같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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