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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by
지혜인
Mar 30.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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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6시 알람을 맞춰놓았지만 눈을 떠보니 8시.
그래도 분주할 이유는 없다.
나는 아이가 있는 엄마도 아니고,
특정 시간, 특정 장소에 있어야 하는 출퇴근러도 아니기
때문이다.
나에겐
조금 늦게 일어난 아침이라도
'굿모닝'하며 입 맞춰주는 여보씨가 있고,
우다다 달려와 얼굴을 핥아주는 여섯 강아지가 있다.
이것이 매일 아침 일어나는 1.5평 우리 집의 아침 풍경.
따로 집은 없구요, 1.5평 캠핑카에 강아지 여섯과 살아요-
집 없이 캠핑카에서 맞이하는 2번의 봄 이래 올해의 봄은 가장 바쁜 날들의 연속이다.
1년 임대료 8만 원에 덜컥 낙찰받은 250평 돌밭, 이곳에 무어라도 심으려면 봄을 놓쳐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밭 주변에 있는 대나무를 얻어다 대나무 틀밭을 만들고 있다.
내가 자르고 엮어 틀밭 사면을 만들면 여보씨는 땅을
파서
틀밭을 세운다.
그리고 강아지들은 우리의 땀과 정성이 고스란히 담긴 그 틀밭에 쉬야를 하고^^;;
이게 잘린 대나무를 그대로 들고와 하는 작업이다 보니 하나를 만드는데도 꽤나 수고스럽다.
통대나무를 질질 끌고 와 톱으로 잔가지를 치고,
틀밭의 가로와 세로 길이만큼 다시 톱질을 하며,
지지대가 될만한 대나무도 톱질로 잘라놓고,
높이 25cm가 되도록 겹친 대나무를 마끈으로 일일이 엮는다.
그럼 여보씨는 지지대가 쑥 들어갈 만큼 땅을 파 틀밭을 세우는데 하나 하고 나면 아이고 허리야,
아이고 어깨야 하는 말이 절로 나오고 이마와 등은 땀으로 범벅이 돼있으니,
오늘은 이만하면 됐다! 조금 쉬어볼 작정이다.
늦은 오후, 한낮의 해가 기울고 바람도 선선히 불어 밭일하기 딱 좋은 오후 3시.
우리는 밭일을
내
팽개치고 걸어서 1시간 거리의 농협 농자재판매장으로 슬슬 산책을 나섰다.
틀밭이 완성되면 퇴비도 내야 하고 양분도 줘야 하므로 우리는 퇴비를 주문하러 가는 길이다.
여보씨와 나란히 손을 잡고,
누구네집 닭들이 뛰어노는 것을 보며 걷다가,
새들이 날아가는 데로 눈도 따라가느라 잠시 멈추기도 하고,
길가에 핀 하얀 꽃나무와 발그레한 벚꽃도 구경하고,
그러다 수고했다며 서로
어깨와 팔을 주물러주는데 우리 둘 꼴이 말이
아니라 웃음이 터졌다.
그리고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캠핑카에서 먹고살며 매일 이동하는 삶이 살짝 따분해지려는 찰나, 우린 시골밭 250평을 임대하고 매일매일 다시 재미가 샘솟고 있다. 물론 육체적 노동은 덤.
동네 어르신들께서 대나무 틀밭을 만드는 우릴 보고 사서 고생을
한다며 어느 분은 대단하다 하시고 어느 분은 안타까워하신다. 요즘엔 시골 토박이들도 다 기계를 부르거나 사서 쓴다고.
아..
. 그럼 재미가 없잖아요.
힛
힘들긴 한데 아직까진 재밌고 좋아요^^
다음 주 월요일에 퇴비가 배달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우리는 다시 1시간을 걸어 밭으로 돌아왔다.
여보씨는 '목요일 = 조깅하는 날'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5킬로 조깅을 하러 나가고 나는 작은 캠핑카 주방에서 보글보글 저녁을 차린다.
강아지 하나는 주방 찬장 앞에, 강아지 하나는 냉장고 문 앞에서 잠을 자고 있으니 무엇이 필요할 때마다 이 친구들을 슥슥 밀어가며 필요한 것을 꺼낸다.
이것이 매일 저녁 일어나는 1.5평 우리 집의 저녁 풍경.
아 오늘은 한 게 별로 없지만
왠지 모르게
행복하다.
모두 굿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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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씨와 강아지들과 캠핑카에서 살다가 시골 과수원으로 귀농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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