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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기억하는 아빠와 아들이 기억하는 아빠
작고도 구슬픈 행복 2
by
지혜인
Apr 7.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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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씨는 내가 친정집에 있는 3개월 동안 기차를 타고 매 주말마다 다녀갔다. 정말 한 번을 빼먹지 않고.
반면에 오빠는 그에 반이라도 왔을까.
왜 모르겠는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일하는 직장인,
주말에는 쉬고 싶기도 하겠지.
봄이라 경조사에 다닐 곳도 많겠고,
날씨가 따뜻하니 가족들과 나들이도 가고 싶었을 것이다.
처가에 일이 있을 수도 있고.
아무렴 다 괜찮다.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을 하며 사는 게 인생이지 뭐.
더군다나 우린 각자의 가정을 꾸리고 사는 다 큰 자식들인걸.
항암치료를 받으러 다니며 아빠는 몰라보게 야위어갔고 마지막을 준비라도 하듯 오빠는 아빠와 여행을 꼭 다녀오고
싶어 했다.
우리 어릴 적엔 부모님께서
농사를 짓느라 항상 바쁘셨기 때문에 가족끼리 어디 놀러 다닌 기억이 별로 없다. 오빠는 아마도 그걸 아쉬워했으리라.
하지만
남자들의 그런 여행은 성사되지 않았다.
고집이 센 아빠는 일도 바쁘고 몸도 아픈데 여행이 무슨 대수냐며 순순히 응할리 없었고 그런 아빠를 잘 설득해 가며 서로 짜증을 내거나 언성을 높이지 않고 여행 이야기를 꺼낼 자신이 오빠에게는 아마 없었을 것이다.
나는 내심
부자간의 여행이 성사되길 바랐지만 아빠가 원하는 것은 아마 이거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시간 날 때 시골집에 자주 와
다 함께 식사를 하고
,
슬슬 동네 길도 같이 걷다가
,
저녁이면 주말드라마를 보며
이런저런 일상의 잡담을 하는 시간
.
그러다 단칸방에 옹기종기 모여자던
옛날옛적 이야기를 하며 같이 잠에 들기도 하고
,
아침에는 일어나라며
다 큰
아들, 딸
이름을 불러가며
보통의 일상을 하루고 이틀이고
함께해
보는 것.
아빠는 늘 다 큰 자식이 나가살면 가족이 밥상머리에 둘러앉아 식사 한 끼를 함께 하는 게 행복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나는 오빠가 힘들겠지만 주말마다 시골집에 와 농사일을 도와드리며 하룻밤이라도 자고 가는 수고를 매 주말 해주길 바랐다.
오빠는 아들로서 그 나름대로 아쉽고 안타까운 순간들이 많을 테니 무엇이 최선인지는 그가 알아서 할 일이었다. 나는 내 바람을 담아 이런저런 얘기를 해 줄 뿐.
오빠는 지금도 다녀오지 못한 아빠와의 여행을 아쉬워할까.
나는 농사일을 하느라 육체적으론 힘들었지만 아빠와 3개월의 일상을 같은 집에서 먹고자며 살아서 그런지 정신적으론 뭐랄까
애잔했지만 든든했고 서글프지만 행복한 그런 3개월이었다.
그리고 그때의 기억이 고생이라기보다 추억으로 남은 지금 참 감사하다.
아빠와 토마토 두둑에
걸터앉아 말없이 김밥을 먹던 그 이른 아침들이 나는 참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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