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만으로 힘이 되는 사람이 있으신가요?

작고도 구슬픈 행복 2

by 지혜인

주말은 여보씨와 오빠가 다녀가는 날이다.


엄마는 농사일도 하랴

늘어난 식솔에 식사도 신경 쓰랴

오랜만에 오는 일꾼들 일도 가르치랴

몸과 마음이 더 바빴겠지만,


나는 든든한 지원군들을 기다리는 더할 나위 없는 주말이었다.


여보씨와 서로 근황을 물으며 알콩달콩 보고 싶다는 전화를 한통 하는 것도 방바닥에 쓰러지듯 누워 감기는 눈을 비벼가며 이어간 날이 대부분이니 이 얼마나 기다리는 주말인가.




여보씨와 함께 비닐하우스 농사일을 하는 건 참 재미있었다.


토마토 모종이 감고 올라가도록 천장에 지지대 줄을 매어 집게로 집어 주는 일도,

어느 정도 자란 모종이 곁가지를 낼 때 그 중간에 나오는 젖순을 잘라주는 일도,

주렁주렁 예쁘게 익은 토마토를 바가지 가득 따내는 일도.


그뿐인가

한 낮 작업장에 모여 방울토마토를 선별하며 박스 작업을 할 때도, 늦은 오후 토마토 박스를 가득 싣고 트럭을 운전해 읍내 공판장에 갈 때도,


그의 존재만으로도 힘이 됐다.

정말 존재만으로도.




여보씨가 트럭 운전대를 잡고 아빠와 나는 옆에 나란히 앉아 우리는 공판장에 간다. 매일 집과 비닐하우스만 오고 가는 내 일상에 유일하게 읍내를 나가 콧바람을 쐬는 순간이다.


"내가 항암 받느라 기력이 없어 딸 사위가 와서 도와주는겨 장혀 장혀"

"아~ 사위유?"

아빠는 공판장 아저씨와 잡담을 나누신다.


"즤 집 있지- 농사 끝날 때까지만"

어느새 나의 여보씨는 처갓집에 살며 농사일을 도맡아 하는 장한 외국인 사위가 되어있었다.


호주에 살 때는 한국 쪽으론 발도 뻗고 자지말라고 그렇게 반대를 하더니 이젠 넘버원 사위라네. 사위 자랑을 늘어놓는 아빠의 머쓱한 말을 어깨너머로 들으며 우리는 다른 농가에서 나온 농산물을 구경했다.


좋았다.

그냥 좋았다.




여보씨는 '젖순'이라는 단어도, 그것을 따는 것도 꽤나 재밌어했다.


다 함께 젖순작업을 할 때는 한참 뒤에 있던 어머님이 자기 옆을 KTX처럼 지나갔다는 말에 다 함께 껄껄껄 웃기도 하고, 엄마와 나는 여보씨 덕분에 웃는 주말이 많아졌다.




나의 여보씨는 참 어메이징한 사람입니다. 제가 방울토마토를 따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때 저 대신 제 지인의 결혼식에 혼자 다녀왔다니까요.


방울토마토 따다 사진을 보고 진짜 얼마나 웃었는지. 허허허


대외적으론 말수도 별로 없는 편인데 아는 사람도 없는 결혼식에 어색하게 혼자 끼어서 밥을 먹고 얼굴 몇 번 본 게 다인 신랑과 사진도 찍구요.


기차 타고 서울로 결혼식을 다녀왔는데도 그 주말에 또 기차 타고 친정집에 다녀갔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단 하루였는데 살짝 시간 내 같이 다녀올 것을, 후회가 됩니다.


그땐 오빠네 식구도 못 온다는 주말이어서 엄마만 혼자 고생하시는 것 같아 발이 떨어지지 않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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