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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만으로 힘이 되는 사람이 있으신가요?
작고도 구슬픈 행복 2
by
지혜인
Apr 7.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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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은 여보씨와 오빠가 다녀가는 날이다.
엄마는 농사일도 하랴
늘어난 식솔에 식사도 신경 쓰랴
오랜만에 오는 일꾼들 일도 가르치랴
몸과 마음이 더 바빴겠지만,
나는 든든한
지원군들을 기다리는 더할 나위 없는 주말이었다.
여보씨와 서로 근황을 물으며 알콩달콩 보고 싶다는 전화를 한통 하는 것도 방바닥에 쓰러지듯 누워 감기는 눈을 비벼가며 이어간 날이 대부분이니 이 얼마나 기다리는 주말인가.
여보씨와 함께 비닐하우스 농사일을
하는 건 참 재미있었다.
토마토 모종이 감고 올라가도록 천장에 지지대 줄을 매어 집게로 집어 주는 일도,
어느 정도 자란 모종이 곁가지를 낼 때 그 중간에 나오는 젖순을 잘라주는 일도,
주렁주렁 예쁘게 익은 토마토를 바가지 가득 따내는 일도
.
그뿐인가
한 낮 작업장에 모여 방울토마토를 선별하며 박스 작업을
할 때도,
늦은 오후 토마토 박스를 가득
싣고 트럭을 운전해 읍내 공판장에 갈 때도,
그의 존재만으로도 힘이 됐다.
정말 존재만으로도.
여보씨가 트럭 운전대를 잡고 아빠와 나는 옆에 나란히 앉아 우리는 공판장에 간다. 매일 집과 비닐하우스만 오고 가는 내 일상에 유일하게 읍내를 나가 콧바람을 쐬는 순간이다.
"내가 항암 받느라 기력이
없어 딸 사위가 와서 도와주는겨 장혀 장혀"
"아~ 사위유?"
아빠는 공판장 아저씨와 잡담을 나누신다.
"즤 집 있지- 농사 끝날 때까지만"
어느새 나의 여보씨는 처갓집에 살며 농사일을 도맡아 하는 장한 외국인
사위가 되어있었다.
호주에 살 때는 한국 쪽으론 발도 뻗고 자지말라고 그렇게 반대를 하더니 이젠 넘버원 사위라네. 사위 자랑을 늘어놓는 아빠의 머쓱한 말을 어깨너머로 들으며 우리는 다른 농가에서 나온 농산물을 구경했다.
좋았다.
그냥
다
좋았다.
여보씨는 '젖순'이라는 단어도, 그것을 따는 것도 꽤나 재밌어했다.
다 함께
젖순작업을 할
때는 한참 뒤에 있던 어머님이 자기 옆을 KTX처럼 지나갔다는 말에 다 함께 껄껄껄 웃기도 하고, 엄마와 나는 여보씨 덕분에 웃는 주말이 많아졌다.
나의 여보씨는 참 어메이징한 사람입니다. 제가 방울토마토를 따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때 저 대신 제 지인의 결혼식에 혼자 다녀왔다니까요.
방울토마토 따다 사진을 보고 진짜 얼마나 웃었는지. 허허허
대외적으론 말수도 별로 없는 편인데 아는 사람도 없는 결혼식에 어색하게 혼자 끼어서 밥을 먹고 얼굴 몇 번 본 게 다인 신랑과 사진도 찍구요.
기차 타고 서울로 결혼식을
다녀왔는데도 그 주말에 또 기차 타고 친정집에 다녀갔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단 하루였는데 살짝 시간 내 같이 다녀올 것을, 후회가 됩니다.
그땐 오빠네 식구도 못 온다는 주말이어서 엄마만 혼자 고생하시는 것 같아 발이 떨어지지 않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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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씨와 강아지들과 캠핑카에서 살다가 시골 과수원으로 귀농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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