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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인 Apr 22. 2023

온 곳이 없는데 어디서 왔냐고 물으시면

따로 집은 없구요, 캠핑카에 살아요.

여보씨와 캠핑카에서 먹고산지 3년 차

따로 집은 없구요.



작년에 우리 집은 강아지가 여섯이 되었습니다.


전국 어디를 가든 강아지 여섯을 산책시키는 모습은 꽤나 이목을 집중시키는 일이었어요. 특히 꼬물이들과 산책을 할 땐 아이들이 금세 몰려와 새끼 강아지들 앞에 주르르 앉곤 했죠.


강아지 여섯을 어떻게 산책 시키냐면요,

둘씩 데리고 같은 곳을 3번 돌 때가 있어요.

3번째엔 어김없이 시선이 느껴지고 어깻말이 들리지요.

그리고 그 시선과 어깻말은 우리가 캠핑카로 돌아올 때까지 따라옵니다.


비로소 대화가 시작되죠.


남편은 어디 사람인지

외국사람들은 강아지를 가족처럼 예뻐한다고

아니 그 작은 데서 강아지 여섯을 어떻게 데리고 다니냐며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가야 된다고 하시는군요.


우리 대추가 참 열심히 왈왈왈 짖는대도 허허허 웃으시며 어디서 왔냐고 물으시길래, 아 어디서 오진 않았고 그냥 캠핑카에서 먹고자고 살아요 라고 대답했더니, 아니 글쎄 어디 사람인데 집이 어디냐고 물으십니다. 아 집이 따로 없다고 이 말을 먼저 해야 했구나.


이다음부터는 같은 질문에 일목요연한 한 줄의 대답이 탄생했습니다.

따로 집은 없구요, 캠핑카에서 먹고살며 전국을 돌아다녀요.




그럼 또 고향이 어디냐는 질문이 오고 갑니다.

그럼 거기에 집이 있고? 라고 또 물으십니다.


아 저는 거기서 나고 자랐고 지금은 친정엄마가 살고 계세요 대답하면 으응 충남 사람이구만 하시죠. 그다음부터는 고향을 덧붙이는 한 줄이 늘어났습니다.


따로 집은 없구요, 캠핑카에서 먹고살며 돌아다니는데 고향은 충남이에요. 남편은 호주사람이구요. 아 강아지는 여섯이 있습니다.


이렇게 분명하고 뚜렷하게 정리가 되다니 우리 캠핑카 살림살이도 그랬으면 좋겠네요.


요즘은 캠핑카를 이동하지 않고 우리 밭에 세워놓은 채 그 안에서 먹고자며 밥을 해 먹고 있습니다. 이동할 땐 정리해서 넣느라 살림살이가 자연스레 정리되지만 지금은 일주일씩 밭에 있으며 물건을 이리저리 옮기는 통에 작은 공간이 아주 난리가 났죠... 껄껄껄




아직 4월인데 한낮에는 밭일을 하기가 너무 덥습니다.


내일은 꼭 일찍 일어나 밭일을 해야지, 아침 7시부터 호미질을 하고 있는데 지나가던 차가 멈추더니 창문을 슥 내려요.


우리 밭도 동네 산 밑자락에 있지만 더 깊숙이 밭일을 하러 가시는 아저씨, 아주머니께서 거기 뭐 심었냐며 돌밭이라 잘 안 될 텐데 어쩌냐고 하십니다. 괜찮아요. 돌도 슬슬 골라내고 그냥 하는 대로 해보려구요.


"어디서 왔어? 읍내에서 왔다갔다 하나

맨날 우리 차보다 먼저 와있더만"


아 한참을 잊고 있었는데 그 문장을 써먹을 상황이에요.

그런데 밭을 임대하고 몇 가지 소개가 추가되었습니다.

한번 들어보세요.


"따로 집은 없구요,

캠핑카에서 먹고살아요.

저는 고향이 충남 예산인데

우리 남편은 호주사람이구요.

강아지는 여섯 마리가 있습니다.


원래는 여기저기 돌아다녔는데 작년에 여길 임대 했어요.

봄이라 뭐라도 해야 될 것 같아서요.

그냥 캠핑카에서 먹고자며 밭일하고 있습니다."


:)


이고 밭에 살림을 차렸네

 맞는 말이죠.


아직 어리구만

매번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밭일을 하니 얼굴을 제대로 본 건 처음이실 거예요.


어린데 참 기특하

 제가 서른여섯이긴 한데... 그렇게 어린 것도, 그렇게 기특한 것도 아닌데 거짓말 인 것 같아 마음이 조금 꿀렁합니다. 하지만 특별히 내색하지 않고 그냥 감사합니다 라고 대답할 뿐, 저는 환갑을 넘긴 부모님 새대에 비하면 정말 젊은 게 틀림없으니까요.




우리 집은 짐을 챙겨 오늘내일 또 어디론가 떠나 볼 예정입니다.

그리고 다시 밭으로 돌아와 밭일을 하겠죠. 집은 따로 없지만 돌아올 공간이 있다는 것은 참 좋습니다.


누군가 어디에서 왔냐고 묻는다면 우리 밭이 있는 전남 담양이라고 해야 할까요? 어쨌든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으니 말이죠.


따로 집은 없구요, 캠핑카에서 먹고사는데 밭이 전남에 있어요. 거기서 왔다갔다 합니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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