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브런치 작가를 신청했을 때 나는 보기 좋게 탈락했다. 심혈을 기울여 적지 않았으니 그럴 만도 하지, 나는 그렇게 브런치를 잊었다.
1년 반이 지난 어느 날 무엇 때문에 내가 다시 브런치라는 공간에 로그인을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번엔 꼭 작가로 승인됐으면! 느낌이 좋았다.
무려 새벽 4시에 일어나 브런치 첫 글을 쓰고 작가신청까지 일사천리로 진행이 됐다. 첫 신청때와는 다르게 이번이 훨씬 쉬었던 이유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최대글자수까지 꽉꽉 채워 내 이야기를 솔직하게 적는데 주저함이 없었기 때문일까.
첫 신청 때는 머뭇거렸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것에 관심을 가지고,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떤 인생사를 사는지,
얼마큼 보여줘야 할까
이만큼 오픈하면 될까
마음속으로 재고 숨기고 지우 고를 반복하다 어정쩡한 자기소개와 그저 그런 첫 글을 달았으니 보는 이도 그걸 느꼈을 수밖에.
이번에는 달랐다.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 -라고 솔직하게 다 표현하고 싶었다. 얼마나 시간을 들여 자기소개란을 적었는지 작가승인이 된 지금도 그 소갯글을 찾아보고 싶은데 한번 제출하면 끝이었구나, 어디 복사라도 해 놀걸.
아니 브런치 매거진은 뭐고, 브런치 북은 뭐야.
왜 나는 브런치 매거진만 만들 수 있지?
브런치 북은 어떻게 만드는 거야?
갓 작가로 승인된, 마음만 굴뚝인 신입의 브런치둥절이다.
둥절둥절에는 아무렴 검색이 최고지.
나는 이런저런 키워드 검색으로 열심히 브런치라는 공간에 대해 알아간다. 와 브런치에 글쓰기라는 주제로 강의도 하고, 책도 내고, 심지어 어떻게 하면 브런치 작가로 승인을 받을 수 있는지 수업도 한다니! 이곳은 이렇게 인기가 많은 공간이구나. 나는 이런 공간에 글쓰기를 할 수 있다니 갑자기 굉장한 신남이 밀려왔다.
그리고 얼른 무엇이든 재밌고 신나는 글감을 찾아 제대로 된 이야기를 시작해야지 생각했으나 무슨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이 글을 적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잘 모르겠다. 여전히 브런치둥절이다.
나는 어떤 사람이지?
나의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을까?
작가 신청을 할 때 무슨 얘기를 어떤 목차로 한다고 적었었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최대한 솔직하게 쓰고 싶다는 것, 그게 무엇이든.
나를 뻥 튀겨 부풀리고 싶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보다 더 보잘것없이 묘사하고 싶지도 않고, 제발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우리 여보씨는 참 솔직한 사람이다.
살짝 억양이 다른 단어를 선택하면 조금 더 있어 보일 텐데 그는 있는 그대로를 참 솔직하게 표현한다. 특히 본인 자신을 설명할 때 더더욱. 20대 어릴 때 나는 이것을 못마땅해했는데 이제는 솔직함의 진가를 알 것 같다. 그리고 나를 표현하는데 솔직하다는 것은 나의 못난 구석도 드러내는 용기와 나를 평가할 다른 이의 눈은 사실 내 인생에 그리 중요치 않다는 깨달음을 나는 여보씨를 통해 배웠다. 그는 나의 가장 큰 영감이다. (아직 젊지만 벌써부터 그는 나의 영감! 짝짝짝^^;; 죽을 듯이 힘들어도 인생에 유머는 필요해)
그래 브런치 매거진과 브런치 북의 차이점을 알았고,
솔직하게 쓰고 싶다는 방향을 잡았어!
근데 무슨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써야 할 까?
1) 네, 가난하게 자랐습니다.
지금의 나는 부모님께서 반을, 그리고 여보씨가 반을 키웠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가난했던 나의 어린 시절, 다 쓰러져가는 시골집과 농사짓느라 늘 바쁘고 힘든 부모님이 계신 곳, 내 유년시절을 돌아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쁘게 키워주신 부모님께 바치는 이야기.
2) 캠핑카가 집이 되면 생기는 일
나는 여보씨와 강아지들과 집은 따로 없이 캠핑카에서 먹고 산지 2년이 되어간다. 전셋집을 정리하고 캠핑카가 진짜 우리 집이 되었을 때 생기는 구질구질한 행복에 대해서 적어볼까? 정말 생각지도 못한 것에서 이런 기쁨과 슬픔이 함께 밀려오다니. 캠핑카에서 나의 감정은 매일 널뛰기를 한다.
3) 세상에 내가 강아지 여섯을 키우다니
살면서 강아지를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눈곱만큼도 한 적이 없었다. 그런 내가 구조되 우리 집에 온 강아지를 시작으로 이젠 여섯 강아지의 멍집사가 되었다. 나를 보는 눈, 내 어깨를 긁는 발, 항상 반갑다는 꼬리. 이 친구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무슨 생각을? 할까?
4) 1년에 8만 원으로 임대한 시골밭 250평
여보씨와 항상 시골에서 야채를 키워먹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1년에 임대료가 8만 원이라니? 덜컥 입찰받은 묵혀진 돌밭 250평. 우리는 이 돌밭을 텃밭 파라다이스로 가꾸는 중이다. 다 됐을 때 파라다이스겠지, 캠핑카에서 먹고자며 풀 뽑고 돌 고르는 고된 밭일 이야기를 써볼까?
이 외에도,
5) 물류센터에서 일하게 되어 감사합니다.
(쿠팡 계약직으로 1년 동안 일하며 배운 감사한 것들)
6) 하려면 다 해주지 뭘 쫌스럽게.
(여보씨가 얄미울 때 하는 나의 쫌스럽고 치사한 복수 이야기)
7) 아무 생각 없이 양치질을 하단 늙어서 후회하지.
(... 말 그대로 아무 생각 없이 양치질을 하다 헛양치질을 하고 있단 걸 깨달았다. 다시 하나하나 공들여 칫솔질 10번씩. 이걸 알았다면 내 과거가 그렇게 헛짓과 후회로 가득하진 않았을 텐데 -하는 것들을 써보고 싶다.)
머릿속에서 글감이 불쑥불쑥 떠오를 때마다 핸드폰에 메모를 해놓는다. 누군가 글감을 여럿 저장해 놓고 오늘은 어떤 글을 써볼까 글쇼핑을 하며 설렌다고 하던데 그게 지금 딱 내 이야기인 것 같다.
아 여전히 브런치둥절이지만, 잘 알지 못해 둥절했던 그 느낌은 이제 설레어서 둥절이 됐다. 브런치씨 우리 오랫동안 설레여봐요, 정말 반가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