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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HYE Aug 10. 2019

여전히 설 자리는 없다.

트레바리 두 번째 책 '개인주의자 선언'과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지식백과에 '사회안전망'을 검색하면 이처럼 묘사되어 있다. 


사회안전망은 원래 브레튼우즈 협정 기관들(세계은행(IBRD), 국제통화기금(IMF) 등)에 의해 사용된 용어로, 기존 사회보장제 도하에서는 적절한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여전히 위험에 노출된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대책을 의미한다. 즉, 세계은행이 개도국과 동구권 국가들에게 차관공여와 함께 구조조정을 요구하면서 그로 인해 야기되는 실업 및 생계곤란자의 양산이라는 부작용을 완화시키기 위하여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는 장치로서 사용하기 시작한 용어이며, 이는 기존의 사회보장이나 사회복지라는 개념보다는 좀 더 긴박하고 과도기적인 상황에의 대응장치라는 의미를 지닌 채 등장하였다.
이러한 사회안전망의 목적은 모든 사회적 위험에 대한 '포괄성'과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적용되는 '보편성'을 실현하고 '국민복지기본선(National Welfare Minimum)'을 보장하는 데에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사회안전망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이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하는, 최소한의 권리와 복지를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그들을 위한 '사회안전망'이다. 그리고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사회가 구성한 이 안전망이라는 것이 약자에게 얼마나 불합리하게 적용되는지, 그리고 과연 그들을 위한 제도가 맞는지에 대한 의문을 끝없이 들게 한다. 물 없이 고구마를 먹는 것처럼 속이 답답-하다.



국가에서는 '사회적 약자'라고 주장하는 한 사회 구성원이 사회가 주는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인지 명확하게 증명해야 한다. 이 사람이 자본주의라는 시스템 안에서 의도치 않게 불이익을 받고 있는지, 어떤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지 등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확인 절차를 밟아야 한정된 자본 안에서 약자에게 필요한 혜택을 적시적소에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시스템 앞에서 모든 사람은 동등하게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우리나라의 일명 '꽌시'라고 하는 (중국에서는 다른 의미로 사용되지만) 지연, 학연 등으로 인해 그 누군가가 다른 사회 구성원들보다 더 큰 혜택을 본다거나 하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된다. 동등하게 주어진 기회 앞에서 사회가 제공하는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을 명확하게 구분 지어 약자들에게 사회를 살아가는 데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어야 한다. 


이론으로는 그럴싸하다. 그리고 납득이 되는 논리라 머리를 끄덕이게 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어떠한가? 사회적 약자들은 여전히 오늘만을 살기도 어렵다. 약자들의 빈곤과 재정적 악화는 여전히 다양한 분야에서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생리대를 사지 못해 신발 깔창으로 해결하는 한 여학생의 잔혹한 현실은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케이트가 그리는 픽션이 아니다. 우리 눈 앞에 존재하는 현실이다. 논리적인 제도 앞에서 약자들은 여전히 설 곳이 없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서는 사회안전망 제도가 얼마나 약자들 앞에서 불합리하게 적용되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 제도의 편의 선 사람들이 약자들에게 얼마나 더 잔혹한지. 그와 반대로, 그 제도보다 더 따뜻한 사람들이 있는 것이 영화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조금은 숨통이 트이게 한다. 사람답게 살고 싶어 하는 그들에게 '사람다운' 태도로 대해주는 약자를 위한 융통성이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인으로써 조금은 위안이 되기도 한다.


우리 동네에는 폐지를 수거하는 공장이 하나 있다. 아침 출근길을 걷는 8시 30분 언저리가 되면 폐지를 싣고 공장으로 향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저 많은 폐지를 어디서부터 끌고 오신 걸까.'라는 생각이 들만큼 수레에 가득 실어 한 발자국씩 어렵게 내딛는다.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빠르게 출근길로 향하는 사람들 속 느릿느릿 걸어가는 수레들의 발걸음은 그 어느 발걸음들보다 우직하다. 어느 날, 수레를 끌고 가던 아저씨의 수레에서 폐지가 와르르 쏟아졌다. 우당탕 소리가 나 뒤를 돌아보니 체념한 듯이 떨어진 폐지를 하나하나 다시 수레에 싣고 있는 아저씨가 있었다. '어떡하지, 어떡하지.'라는 생각으로 걸어가다 다시 돌아보는 순간, 그 옆에는 함께 폐지를 수레에 실어주고 있는 어떤 30대의 직장인 남자가 있었다.


약자들을 위한 사회적인 제도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화해야 하고 빠른 시간 내에 그들에게 올바른 혜택이 주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그 사회를 살아가는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우리는 약자들을 위한 "사람다운" 태도를 보여주고, "사람다운" 생각을 하며 그들을 위한 목소리를 내 줄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나 살기 바쁘다. 그렇다. 다만, 그들을 위한 배려와 목소리는 사회를 살아가는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지 않을까 라는 막연한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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