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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HYE Nov 17. 2019

순간을 내뱉기보다는 담기로 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술이라도 한 잔 하는 날이면 나는 항상 마무리 멘트 담당이었다. 함께인 순간을 만끽하고 있는 나의 좋은 기분과 마음을 입 밖으로 꺼내어 말로 전하기를 곧 잘했다. 우리가 이렇게 모여 한잔 하면서 인생을 논할 수 있는 나이가 되다니. 너희들과 함께라서 행복하다.라고. 


사랑했던 연인들에게도 그와 함께 있는 ‘지금 이 순간’이 가슴 벅차게 행복해질 때면 갑자기 찾아오는 봄처럼 따뜻해진 나의 마음속 숨결을 말과 함께 꺼내어 보였다. 나의 마음을 그에게 전할 수 있는 단어들을 골라 내뱉으면 단어와 단어들은 둥둥 떠다니며 빛났다. 


말이 주는 온기가 좋았다. 순간을 말로 담아 이야기하는 순간에는 시간이 엿가락처럼 늘어져 뉘엿뉘엿 가는 듯했고 복작복작한 공간 속 우리에게만 얇은 막이 쳐져 세상에 우리만 존재하는 듯했다.



다만, 순간은 순간이었다.


말을 내뱉고 돌아오는 그 길은 알 수 없이 허무했다. 잡히지 않는 찰나들을 잡으려 하는 나의 욕심이 정의되지 않은 나의 감정들을 쉽사리 내뱉게 했고 그 내뱉은 후의 감정은 언제나 허무해서 참을 수 없었다. 그리고 돌아온 나의 방 침대에서 누워 잠이 들기 전 단어들이 가득했던 그 순간을 돌이켜보면 여전히 손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처럼 좀처럼 잡을 수 없었다.


말은 흐르듯 존재할 뿐 담을 수 없다. 순간을, 마음을, 생각을. 내뱉는 순간의 존재는 퇴색되고 변형되기 쉽다. 


공간 속 존재하는 시간들을 때로는 그저 말없이 마음으로 담기로 했다. 나의 사람들의 눈빛들과 몸짓들, 함께 나누었던 공기들을 마음속에 담는 것이 말로 내뱉는 것보다 그 순간을 더 아름답게, 오롯이 마주할 수 있게 하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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