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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HYE Jan 01. 2020

새해의 얼굴들

새해를 맞이하기 위한 다양한 의식들이 있다. 해돋이를 보러 간다거나 애정 하는 가수의 공연을 보러 간다거나 집에서 MBC 가요대제전을 보며 맞이하거나.


나의 경우는 기독교인스럽게 교회에서 새해를 매번 맞이한다. 어렸을 때부터 교회를 다녔던지라 새해를 다른 곳에서 맞이한다는 것은 극히 드물었다. 그 극히 드문 경험 중 하나는 스무 살이 되는 해였는데, 고등학교 때 절친이었던 두 명의 친구들과 함께 종각에서 대학입시의 구렁텅이에서 고생했던 순간을 추억하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게 되는 우리를 축하했었다. 셋 모두 경기도 시골 출신이라 서울에서 새해를 맞이하는 것이 비로소 '어른'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서울 한복판에서 많은 사람들을 헤집고 다니는 것이 나름의 모험처럼 여겨졌다. 수많은 타인들이 섞인 제야의 종 앞에서 카운트다운을 하고 새해가 되는 12:00AM에 세 명이 얼싸안고 방방 뛰며 합법적인 어른의 시작점인 20살을 기뻐했던, 그 순간이 나름 어른이 된 지금 추억해보면 그저 귀엽다.


새해의 전날인 어제는 '어김없이-송구영신-예배'를 위해 회사가 끝나자마자 본가로 향하는 일정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다녔던 교회로 가족들과 함께 드리러 가야 하기에 오후 4시부터 슬슬 불안해했으나 역시나. 시간 맞춰 도착할 수 있을 정도의 시각에 업무를 가까스로 마무리 지었다. 올해의 지난날들은 나에게 다양한 변수를 안겨주었는데 12월 31일마저도 이 변수란 놈은 퇴근 전 일을 미친 듯이 제공함으로써 끝까지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뭐, 올해를 돌이켜보면 예상했던 시나리오라 그다지 놀랍지 않았다는 후문.


교회에 도착해 가족 구성원이 나란히 앉아 예배를 기다리며 주위를 돌아보니 그때서야 '아, 새해가 오긴 오는구나.' 싶었다. 예배를 함께 기다리는 사람들이 아직 터지지 않은 풍선을 안고 있는 것처럼 다양한 감정을 담은 오묘한 표정들을 하고 있었는데, 그 표정은 기쁨과 흥분과 안도가 섞였다고 해야 할까. '새해를 맞이하는 공기는 이랬었구나' 하고 새삼 신기했다.


1월 1일이 된다고 해서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이 '리셋'되지는 않는다. 어김없이 24시간이라는 하루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찾아올 것이며, 그 하루의 날들이 점처럼 모이고 시간의 선이 되어 우리는 외줄 타기를 하듯 열심히 부채질하며 이내 발을 하나씩 내어보겠지. 참 신기하게도, 1이라는 숫자가 가진 힘이라고 해야 할까. 교회의 분위기가 몽글몽글한 것을 보니 사람들은 다가올 새해를, 그 새해를 살아갈 '새로운 나'를 꽤나 기대하는 것 같았다. 



본가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 한 켠에는 작은 헬스장이 있다. 서울 가는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에 그 헬스장을 지나니 세 명의 사람들이 열심히 앞을 보고 러닝머신을 걷고 있었다. 아주머니, 아저씨, 그리고 젊은 청년 한 명씩. 헬스장이 그닥 크지 않고 노후화돼서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기에 셋의 얼굴이 창문 위로 둥둥 떠 있는 모습이 꽤나 신기했다. 그리고 잘은 보이지 않았으나 그들의 얼굴과 움직임은 나름 비장했다. 


러닝머신 트리오를 뒤로 하고 지하철을 타고 가는 길에 괜스레 그들을 응원하게 되더란다. 새해랄게 별거 없는 것이지만 어떤 다짐을 하게 되었다면,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첫날이 되었다면, 그 생각을 그래도 응원하고 싶었다. '새로운 나'라기보다는 '더 나은 나'를 위한 멋진 걸음일 테니까.



P.S. 본가를 가는 그 어느 주말에 또 그들을 본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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