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HYE Jan 14. 2020

왼손잡이의 가위질

흔하다고 하면 흔하기도 하지만 주변을 돌아보면 또 그렇게 흔하게는 없는, 나는 왼손잡이입니다.



왜 때문에 왼손잡이가 되었냐 물으신다면 나도 그 이유는 모르겠어요. ‘본능’이라고 해야 할까요. 글을 쓸 때는 내가 쓴 글자를 보지 못해서 줄이 없는 노트를 쓰게 되면 하염없이 밑으로 내려가는 글자들을 막지 못했으며 (글자가 자꾸 번지는 바람에 결국 연필잡이는 오른손으로 바꿨다는 사실. 피땀눈물이 이뤄낸 결과랄까…) 밥을 먹을 때는 어머니가 저에게만 국을 왼쪽에 두어주시기도 했죠. 이처럼 어렸을 때 왼손잡이로 사는 일상이 그다지 어렵지많은 않았습니다.



하지만 딱 하나, 무지하게 불편했던 점은 바로 ‘가위질’이었습니다. 오른손잡이를 위한 가위만 존재했던 미술시간, 꼴라쥬를 한답시고 가위질을 엄청나게 시키는 날에는 헛돌기만 하는 가위가 야속하기만 했습니다. 나는 분명 선을 따라 열심히 가위질을 하는데 자꾸 종이가 접히고 난리. 잘려야 되는 종이는 깔끔히 잘리질 않고 누군가가 쥐어뜯은 마냥 잘려있는 모양새를 보자면, 그 어린 나이에 ‘분노’라는 감정을 가위질에서 빠르게 접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나를 오랜 시간 괴롭혔다면 괴롭혔다고 할 수 있는 그 ‘왼손의 가위질’을, 오른손잡이용 가위로 이뤄내는 방법을 약 20년간 연마하니 나름 잘리긴 잘립디다. 이제는 뭐, 사람이 자른 종이같이 자를 수 있어요. 사람은 참 적응이 빠른 동물임이 사실인 것 같습니다.



가위질을 오른손으로 바꾸지 않은 것에는 나름의 곤조라는 것이 존재하기도 했겠지만, 오른손잡이용 가위 때문에 나의 왼손잡이 인생을 오른손으로 바꾸는 것이 괜스레 싫었달까요. 나의 의지로 바꾼 연필잡이는 내가 ‘원해서’ 바꾼 결정이었지만 어떤 장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바꿔야만 한다면 그건 제가 ‘원해서’ 바꾸는 것은 아닌 거니까요. 내가 오른손 가위잡이가 된다는 것은 다름을 용납하지 않는 천편일률적인 사회와의 ‘타협’이라는, 휘향 찬란한 반항아적 논리였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패닉의 ‘난 왼손잡이야-’라는 후렴구를 듣고 있으면 괜히 으쓱대기도 했었던 건 아마 같은 이유였겠지요.



이제 아주 가-끔은 오른손으로 서툴지만 가벼운 가위질을 시도하기도 하는, 아직도 반항심이 조금은 도사리고 있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가위와 저는 ‘타협’이란 것을 조금은 이뤄냈다고 볼 수 있겠네요. 성숙해지는 과정이라 생각해야 할까요. 음… 다름을 용인하지 않는 사회와의 날카로운 대립보단 중재를 택하며 둥글둥글해지는 과정이다, 라고 생각해버리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가위를 든 손을 잠시 내려놓고 그 손으로 그들과 악수를 해봅니다.

왠지 모를 씁쓸함이 들기도 합니다만.
















매거진의 이전글 새해의 얼굴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