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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HYE Feb 23. 2020

나의 수많은 관계들이여

우리는 오늘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조촐한 나의 집에 친구가 놀러 오게 됐다.

다양한 주제를 넘나드는 대화를 하던 중, 우리의 공백을 메꾸는 나의 어쭙잖은 질문이었다. 봄베이진에 토닉워터를 섞어 마셨다. 진토닉을 마셔보겠다는 우리의 사치 아닌 사치. 몽롱히 취한 두 명의 여자는 질문이 던져진 공백의 공간에서 살며시 마음의 악수를 나누었다. 그 후의 대답도 내가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대답은 어떠했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우리는 그 대답을 나눈 후 진토닉이 반쯤 담긴 잔을 쨍-하고 부딪혔다. 쨍-하는 소리가 그 어떤 술잔의 부딪힘보다 컸던 것과 생크림처럼 몽글몽글한 마음들만이 남아있는 것 보니 그날도 적잖이 즐거웠나 보다.


지금을 행복해하는 우리가 같은 마음이어서 좋은 것. 그리고 우리는 지금과 같은 순간이 켜켜이 쌓여서 나중의 우리도 과거의 우리들을 행복하게 기억하게 될 테니. 미래의 우리를 상상하는 것이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걸까. 그렇게 지금을 바라보기로 한 현재의 우리는 순간을 만끽하기로.



돌이켜보면 다양한 형태의 사람들과 관계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관계들 중 몇몇은, 아니 다수는 과거의 어딘가에 묻어두었다. 지금의 칼날에 서서 광활한 기억의 대지를 살펴본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기억의 대지에는 자신의 존재를 주장하는 다양한 모양새의 봉우리들이 있다. 봉긋이 올라와 있는 땅들의 형태는 참으로 다양하다. 어느 봉우리는 말끔히 올라와 끄투머리에는 나지막이 꽃이라는 게 피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어느 봉우리는 울퉁불퉁한 모양새로 마지막 손길을 제대로 받지 못하였는지 제멋대로이다.


그 관계들은 각자의 사연이 있다. 그리고 나는 그 관계의 1인칭이기도 했으며 2인칭이기도 했다. 기억의 그 어딘가에 묻혀있다 하여 잊지 않았다. 즉슨, 부정하지 않는다 하겠다. 다만, 지금의 나는 나와 너와 우리를 어루어 만져 줄 수 있는 관계의 모양들을 더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고. 지금의 순간들을 맞닿은 마음으로 들여다볼 수 있고 어루만져 줄 수 있는 것에 의미를 두게 되었다고.


지난 나의 수많은 관계들이여, 지금의 나를 만들어가는 여정에 함께 해주어 고맙다는 말을 던져보려 한다.

부디 나를 기억하지 않더라도 순간은 기억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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