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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HYE Apr 27. 2020

다양한 모양의 위로들

그런 날이 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 같은 날. 풍선에 바람 빠지는 소리가 쉬이- 나는 듯한데 그 소리의 주인은 알고 보니 내 멘탈인, 그런 날. 일을 하고 있는 몸은 분명 컴퓨터 앞에 앉아있으나 정신은 온데간데없다. 일을 꽤 좋아하는 나에게 이렇게 상태가 메롱인 날들이 이따금 찾아오는데 일종의 ‘번아웃’이 단타로 찾아왔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런 날은 재정비가 절실하다. 그리고 그날도 어김없이 요가원으로 향했다. 오늘을 어렵사리 보낸 나에게 건네어 줄 위로를 한 보따리 들고. 깨나 무거운 보따리였음에도 걸어가는 길은 되려 사뿐했다. 


요가원에 들어서서 미리 와 있는 친구들에게 간단한 인사를 건네고 자리에 앉아 선생님과 한 동작씩 이어나가며 요가 수련을 시작했다. 수련을 하다 보면 회사에서 보낸 시간 동안 다양한 초점들로 흐려져버린 마음을 하나로 묶어나가는 과정을 겪는다. 그 과정을 그 어느 수련 때보다 온전히 느꼈는데, 그만큼 조각났던 마음을 온 힘을 다해 엉기고 싶었던 것 같다. 그 힘씀이 순간순간 애처로워 보였던 것은 그만큼 이 시간이 애절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땀이 후두둑 떨어지는 동작들 속에서 조금씩 마음속 위로의 보따리를 풀어나갔다. 



그날도 요가의 마지막 동작인 ‘사바아사나’를 하려 자리에 누웠다. 온몸에 힘을 빼고 누워 눈을 감고 다양한 생각들이 머물다 가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다 갑자기, 난데없이 눈물이 났다. 누워있는 동안 등장했던 다양한 생각들이 조금은 슬펐던 오늘의 나를 더 슬프게 몰아가기도 했고 그 생각들이 다시금 사라질 수 있도록 스스로를 위로하는 과정 속 나와버린 배출물 같은 것이었다. 관자놀이를 스치는 눈물들이 그 어느 때보다 시원한 온도로 느껴졌다. 이렇게 나긋한 감정으로 마치게 된 하루가 새삼 고마웠기도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의 바싹 깎은 손톱처럼 얇디얇은 손톱달을 보았다. 가로수들은 봄답게 완벽한 초록색을 품고 있었고 그 배경에는 청량한 깊은 네이비색의 봄밤 하늘이 조화로웠다. 그 날을 완벽하지 못한 하루라고 생각했다. 차게 식어버린 마음의 온도를 데우기엔 소생술이 불가능해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다행히도, 그런 날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맞닥뜨린 다양한 모양의 위로들은 또 살아낼 다음 날들을 기대하게 했다. 가로수들 아래 가벼워진 발걸음에 또 살짝 행복해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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