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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HYE May 04. 2020

너의 대리인이 되고 싶지만

“진짜 내가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아.”


힘들어하는 친구를 만났다. 나란히 바에 앉아 와인잔을 굴리던 그녀의 얼굴이 어색했다. 항상 밝은 표정이었던 그녀의 얼굴에 드리운 어두움을 보니 그 어떤 명암보다 짙어 보였다. 어렵사리 계약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이 된 그녀는 한동안 회사에서 일하는 스스로를 대견해하는 듯했다. 그녀에게 풍겨오는 에너지가 참 좋았다. 힘들게 일하는 것 같아 위태로웠던 그녀에게 좋은 소식이 전해져 나 또한 대견했다. 그러던 그녀가 회사에서 비롯된 사사로운 구설수에 올랐다. 그들이 수군댔던 바늘처럼 뾰족한 소문들로 수도 없이 자신을 찔렀으리라.


불공평하게 돌아가는 세상의 섭리를 감내하는 힘이 꽤 강하다 생각했던 나 또한 헤어날 수 없는 늪에 빠진 적이 있다. 매주 교회를 가서도 기도하며 하나님을 원망했다. 당신의 자녀를 구원해달라고. 언제 나에게 기회를 주실 건지 당장 말씀해달라고. 위로를 던지려 하는 영상을 보거나 음악을 마주치게 되면 동하는 나의 마음을 채찍 했다. 잠시나 느껴지려던 마음의 평안이 지나면 마주쳐야 할 나의 모습이 더 절망적일 것 같아 철저히 차단했다. 그 어떤 것에 마음을 기대는 것이 두려웠다. 달콤하지만 옆에 두어선 안 되는, 사탕발림 같은. 시간은 위태로운 젠가처럼 쌓여갔다. 그 위태로움 속에서 씨-게 생채기가 난 마음은 조금씩 제 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마음속 어두움을 마주하기란 살을 에는 듯한 아픔이 동반되어야 가능했다. 그 속에서 나를 합리화하는 과정도 있었고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끊임없이 고뇌했다. 그렇게 최대한 많이 아프고 나서야 어렵사리 세상에 악수를 건네는 손을 건네어 볼 수도 있었다. 



나에게 해답을, 혹은 진심 어린 동정을 얻으려 했던 그녀의 마음을 왜 모르겠는가. 잠시나마 우리가 와인잔을 부딪히는 지금만은 아파하는 친구의 대리인이 될 수 있다면 돼주고 싶을 만큼. 다만,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더 공허해져 버린 그녀의 눈은 내가 대신할 수 없기에 그저 고개를 잘게, 자주 끄덕여만 댔다.


그저 내가 토닥였던 작은 너의 어깨가 나아지는 과정을 겪을 너에게 작은 힘이 되길 바라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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