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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HYE May 11. 2020

방 구조를 바꿔봤다

작디작은 내 오피스텔 방은 회사를 제외하면 가장 오래도록 머무는 공간이다. 침대에 누워 영화를 보거나 빈백에 앉아 책을 읽거나 출출하면 맥주와 함께 할 떡볶이를 시켜 먹거나. 한 달 전쯤부터 책상을 하나 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노트북을 들고 침대에 반쯤 누워 글을 쓰곤 했었는데, 쓰다 보면 어느새 반쯤 누워있었던 나의 몸이 스리슬쩍 완전하게 누우려는 느슨한 상태가 되어버리기 때문. 침대가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알면서도 매번 새삼 깨닫는 이런 어리석은 인간은 이제서야 책상을 사야겠다고 ‘다짐’했다는 후문이다. 자, 이제 오래도록 익숙해져 버린 나의 동선을 낯설게 만들어보자. 낯선 나의 움직임이 익숙해져 버린 나의 공간을 더 좋아지게 할지도 모르니.


방의 입구에 서서 가구의 배치를 그려본다.


책상은 창문 가까이에 두고 싶다. 해가 쨍하게 떠 있다 이내 어스름해지는 초저녁의 모습을 지켜볼 수 있는 순간을 자주 마주하지 못하는 게 아쉬웠다. 글을 쓰면서 해가 지는 모습을 보아야겠다. 아, 그리고 의자는 두 개를 사야겠다. 친구가 집에 놀러 오면 책상에 테이블보를 깔고 함께 홈파티를 해야겠다. 성수동의 따뜻한 저녁 온기를 함께 느끼면 배로 행복할 테니. 나만 보면 아쉽잖아. 그렇다면 침대는 방 중간에 두자. 책장은 침대 옆에 두고 손만 뻗으면 책이 닿을 수 있게 해야지. 대신, 이사 다닐 때마다 졸졸 따라다녔었던 묵직한 화장대는 이제 그만 보내주어야지. 




한참을 서서 그려본 집의 구조가 꽤 맘에 드는 것 같으니 이제 가구들을 살 차례다. 자주 들여다보던 온라인 가구 쇼핑몰에 들어가 오래도록 앉아 시간을 보낼 책상과 접이식 의자 두 개, 화장품을 넣을 서랍, 그리고 햇살을 지금보다 더 예쁘게 맞이할 수 있는 블라인드를 장바구니에 넣어 한 방에 질러버렸다. ‘짜릿한 소비’라는 것이 이런 게 아니겠나. ‘결제’를 클릭하는 나의 몸동작이 아주 깔끔한 순간이랄까.


매일 우리 집 앞에 커다란 박스들이 켜켜이 쌓이는 것을 보니 심적 압박감과 함께 즐거운 상상이 시작된다. 두려움과 기대는 언제나 함께 찾아오는 것이기에 ‘기대’라는 것에 내 마음을 조금 더 기대 보면 더 행복한 상상을 할 수 있다. 집에 오면 할 것들이 잔뜩 기다리고 있다는, 그렇기에 똑같은 일상을 사는 하루가 조금 더 분명히 지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어쩌면 요새 귀가하는 나의 발걸음을 춤추게 했을지도 모르겠다.



가구를 옮기기 위한 청소를 사악- 한 후, 미리 사두었던 전기드릴로 책상의 다리를 조립하고 블라인드를 달아둘 천장에 구멍을 뚫고 서랍의 나사를 조이는 행위는 며칠간 계속됐다. 블라인드를 달기 위해 천장에 못을 박을 때는 곡소리가 자연스레 터져 나왔다. ‘아, 남편 있고 싶다.’라는 생각을 한건 참 이례적인 일이어서 새삼 나 스스로에게 놀라는 경험도 했달까. 모든 것이 정리된 나의 집에서 새로운 동선과 새로운 가구들과 새로운 일들을 하니 이쯤이면 만족스러운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책상에 앉아 괜히 뒤를 돌아 새로 자리 잡은 가구들이 가득 찬 나의 방을 바라본다.


흐뭇한 나의 마음이 온 방을 가득 채우고 나서야 비로소 완성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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