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수육과 6.25 전쟁
초등학교 졸업식날, 눈을 뜨기 싫어 한참을 이불속에서 빈둥거리다 할머니의 고함을 듣고 겨우 일어났다. 마지막 마침표와 설레는 새 출발을 준비하는 졸업식은 나에게 그다지 반갑진 않은 존재였다. 사실 나는 엄마 아빠대신 할아버지, 할머니와 가야 하는 졸업식이 싫었다. 다른 아이들이 나를 보며 수군대리는 것 또한 참기가 어려웠다. 슬픈 예감은 왜 항상 적중하는지 젊고 깨끗하게 차려입은 친구들의 부모님과 대비되는 촌스럽고 늙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교실 뒷문에 서계셨다. 나는 졸업식 내내 고개를 들지 않고 책상에 눈을 박아놨다. 애꿎은 책상은 내 눈에서 나온 레이저에 뚫어질 듯이 보였다. 졸업식이 시작되자 교실은 부모님과 학생들의 소란스러움으로 가득 찼다. 웅성웅성 거리는 소리가 익숙해질 때쯤 선생님이 친구들의 이름을 한 명씩 호명하기 시작했다. 이름이 불린 친구는 교탁 앞으로 나가 선생님이 준비해 온 작은 꽃다발과 졸업장을 받아 들고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때마다 각자의 부모님이 준비해 온 카메라에선 셔터음이 터졌고 난 이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기만을 바랬다. 드디어 내 이름이 호명되는 순간의 추억도 고스란히 내 사진첩에 담겼다. 고개를 푹 숙인 단발머리를 한 내가 애처롭게 교탁 앞에 서있다. 그날 할아버지 할머니는 나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때의 나는 너무 어려 제 마음조차 헤아리지 못하는 상태로 두 분의 마음까지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날의 나의 모든 몸짓은 서울에서 부천으로 내려와 본인들의 남은 생을 기꺼이 쓰겠다는 두 분의 결심을 무너트리는 행동이었다. 나는 그날이 평생 사무치게 죄송했다. 어제 문득 사진첩을 열어 졸업식의 추억을 꺼내 들었다. 추억 속 할아버지 할머니는 노쇠하기만 했었는데 어제 본 두 분의 모습은 뜻밖의 충격을 안겨 주었다. 할아버지는 주름 하나 없는 진한 고동색의 가죽재킷을 입고 있었고 할머니는 부잣집 마나님 같은 자주색 긴 점퍼를 걸치고 계셨다. 까맣게 염색을 한 두 분의 모습에서는 나이를 체감할 수 없는 젊음이 보였다. 어린 손녀를 기죽게 하지 않으려고 일부러 더 꼿꼿하게 새운 허리에서는 애달픈 노력도 엿보였다. 나는 젊은 두 분의 사진을 보고 마음이 너무 아파 울다가 웃다가 다시금 손으로 만지기를 반복했다. 그날 졸업식을 다 마치고 할아버지, 할머니와 나는 짜장면집으로 향했었다. 언제부터 졸업식날 짜장면을 먹는 게 당연한 루틴이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셋은 동네에서 제일 큰 짜장면 집으로 향했다. 할아버지는 짜장면을 나는 볶음밥을 매운 걸 좋아하시는 할머니는 짬뽕을 시켰다. 그 순간에도 나는 큰소리로 떠드는 다른 테이블에 있는 친구와 그들의 부모에게 온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집으로만 가고 싶은 마음에 가장 좋아하는 짜장면을 먹으면서도 나는 맛도 느끼지 못한 채 허겁지겁 먹기만 했다. 그때 갑자기 식탁 위로 큰 접시가 놓였다. 탕수육이었다. 달콤하고 새콤한 냄새가 코를 찌르며 식당 안에 사람들의 눈이 다 우리 쪽으로 쏠렸다.
"할아버지, 이게 뭐야? 탕.. 탕수육 시켰어? 왜? 나 배부른데...."
그때까지 한 번도 탕수육을 제대로 먹어보지 못한 나는 당황해서 눈이 휘둥그레졌고 말까지 더듬거렸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웃으면서 삐뚤어진 입으로 말씀하셨다.
"우리 손녀딸 졸업식날인데 할아비가 탕수육 하나는 시켜줘야지, 안 그러냐? 어서 먹어, 많이 먹어"
나는 그제야 옆에 테이블에 시선을 거두며 오로지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우걱우걱, 그날의 탕수육은 나에게 최고의 음식이었다. 얼른 먹고 그 자리를 피하고 싶었던 내가 한없이 싫어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식당 안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 다 나갈 때까지 아주 천천히 탕수육을 먹었다.
할아버지가 입이 비뚤어진 이유는 전쟁 때문이었다. 할아버지는 6.25 때 참전용사로 전쟁에 나가셨다. 피가 튀기고 1초에 무수한 생명들이 사라지는 그곳 6.25 전쟁에서 살아남으려 할아버지는 갖은 노력을 했다고 하셨다. 그의 어머니와 어린 아내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말이다. 할아버지는 몇 년간의 긴 전쟁 끝에 제대를 앞두고 있었다. 제대 전 오랜만에 거울을 들여다본 할아버지는 깜짝 놀랐다고 했다. 거울 속에 있어야 할 젊은 자신은 온데간데없고 기나 긴 전쟁 끝에 얻은 훈장 같은 상처가 남아있는 퇴역 군인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할아버지는 큰 부상은 없었지만 총알이 얼굴을 스치고 간 상처를 지닌 채 집으로 돌아왔다. 할아버지는 평생 윗입술과 볼이 일그러진 채로 사셨지만 워낙 잘생긴 얼굴이라 그리 티가 안 났다. 다만, 웃으실 때만 살짝 나만 아는 정도의 삐뚤거림만이 있었기에 나는 대수롭지 않았다. 나는 할아버지의 미소가 좋았다. 흰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는 얼굴엔 전쟁의 아픔도 현실의 고난도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전장에서 돌아오기 전까지의 설움을 나에게 자주 말씀하셨다. 열네 살에 시집을 온 할머니는 코스모스처럼 이뻤다고 했다. 과거사진을 보면 그 말에 신빙성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하시니 난 그 말을 믿고 싶다. 꽃처럼 이뻤던 자신을 시어머니가 전쟁통에 팔아먹으려고 했던 이야기는 백번을 넘게 들어서 줄거리를 술술 외웠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백년회로를 맺은 후 정확히 일 년 만에 전쟁이 일어났다. 할머니는 무뚝뚝하지만 기댈대라곤 할아버지 밖에 없어서 하나뿐인 남편을 전장으로 보내기 싫었다고 했다. 할아버지가 전장으로 나가기 하루 전날 할머니는 배갯잎과 저고리가 다 젖을 정도로 울었다고 했다. 피난길에서 산처럼 쌓여 죽어있는 사체들을 보며 할머니는 몇 년간 소식이 없는 할아버지를 떠올렸다. 죽었을 거라고, 살아도 병신으로 돌아올 거라고 체념하며 할머니는 과부로 살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그렇게 피난길에 올라 집도 절도 없이 떠돌이 생활을 하던 어느 날 시어머니가 갑자기 자신에게 살갑게 구는 날이 왔다고 했다. 일찍 어머니를 여읜 할머니는 그 다정한 손길에 넋이 나가 머리를 맡기고 몸을 맡기며 치장을 했다. 그러나 그 치장이 늙은 아저씨의 첩으로 만들려는 손길을 알았을 땐 할머니는 시어머니와 평생 화해하지 않을 거라는 마음을 먹었다. 또한 전쟁통에 먹을 것이 부족해 동냥질을 하러 나갔다가 집에 돌아오니 딸과 앉아 몰래 흰쌀밥을 둘이서만 먹고 있는 걸 눈으로 보았을 때는 화병으로 쓰러질 뻔했다고 했다. 상상할 수 없는 그 시절 모진 시집살이를 겪고 전쟁이 끝난 후 할머니는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 뒤 얼마 후 할아버지가 멀쩡한 두 다리로 집으로 돌아왔을 때 할머니는 기절을 했다. 죽은 사람이 집으로 돌아왔다고 생각한 것이다. 귀신을 본 듯 할머니는 얼이 빠져 며칠을 일어나지 못하다가 겨우 정신을 차려 신랑의 손을 잡았다. 총성이 울리고 일본군사가 뱀처럼 눈을 뜨고 다니는 시절을 할머니는 오래도록 회상했다. 화약냄새, 귀를 찌르는 듯한 총성, 사람들의 절규가 몸이 고된 날 에는 어김없이 찾아와 괴롭다고 하셨다.
나는 일부러 전쟁에 관한 영화나 드라마가 나오면 할머니를 텔레비전 근처에 오지 못하게 했다. 채널을 돌려버리거나 리모컨을 찾아 무참히 꺼버렸다. 할머니의 아픔이 나에게도 전달되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할머니를 사랑했다. 그들의 슬픔과 기쁨이 나에게는 전부였다. 할아버지는 내가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시간이 되면 대문 바로 앞에 있는 작은 구멍가게 앞에서 나를 기다렸다. 나는 그 기다림이 긴 게 싫어 빠른 걸음으로 집으로 제깍 돌아가곤 했다. 나는 할아버지를 사랑했다. 그들은 나의 아빠이자 엄마로 내 삶에 큰 울타리와 사랑이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밑동의 뿌리까지 깡그리 나에게 남겨주고 간 그들의 인생을 난 무엇으로 보답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