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혜 Jan 10. 2017

별안간 진짜 어머님이 되어버리다.

니똥 내똥

요즘 남편이 참 이쁘다.

아니 이쁘다라는 표현 보다 좀 더 무게감을 줘서 참 자랑스럽다.


목표지향적인 성격과, 또 일적인 고민이 많은터라 나는 평소 남편에게 여유를 가지라는 잔소리....를 많이 하는 편이었다. 근데 춘이가 태어나고서 남편은, 몸은 더 바쁘고 고되더라도 시간을 쪼개서 춘이를 돌보는 동시에 일도 소홀히 하지 않는 모습에서 오히려 여유로움을 느꼈다. 그리고 지금 모습이 참 멋지다는 생각을 했다. 본인과 싱크로율 99% 여서 그런가..어쨌든 트렌트세터 울트라육아대디같고 동시에 더 마음이 따뜻한 비즈니스맨이 되어가는 것 같아서 참 맘에 든다.


암튼 이걸 말하자는 게 아니라, 이런 남편이 오늘 일얘기도 하고 맛난 돼지도 먹는..중요한 자리가 있어서 평소보다 늦는다고 했다.

이상하게 우리 효자 춘이는 엄마랑 단둘이 있으면 더 울고 보채는데 오늘도 여지없이 이모님이 가시고 나자마자 두 눈을 번쩍 뜨고 잠에서 깨어나 의젓하게 자지러지기 시작했다.


집에 온지 2주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손목이 떨어져나갈꺼 같다. 지푸라기라도잡는 심정으로 구입한 백** 요술아기띠는 말그대로 나에게 팔목을 안쓰고 춘이를 달랠 수 있는 30분의 마법같은 시간을 선물해줬다. 30분 후 춘이가 밥달라고 허우적거리며 내 얼굴을 쳐대서 내일을 기약하며 아기띠와 안녕.얼른 밥을 대령했다.

아뿔사, 밥은 춘이가 먹는데 갑자기 나에게 큰 신호가 찾아왔다. 저녁 7시부터 밤 12시정도까지는 의젓춘이가 헐크로 변신하는 헬타임이기에 한시라도 내려놓을 수 없는 상황..난 일단 참았고 밥 다먹은 춘이를 배위에 올려놓은채 전화를 스피커모드로 엄마와 전화수다를 떨며 딴 생각을 하고자 무진장 노력했지만 실패...

화장실이 급하다고 하소연하자 아무래도 엄마는 손주보다는 자식이었던지, 울더라도 내려놓고 얼른 갔다오라했지만 난 아직 집에 온지 2주밖에 안되는 초보어머님..숨넘어가게 울게 내버려두기엔 아직 멘탈정비가 안된 상황.

엄마는 나의 신음;소리를 듣다 걱정되었던지 본인이 달래고 있겠다는 말도 안되는 소릴 했지만, 한계가 온 나는 스피커폰으로 되있는 전화기를 최대한 춘이 옆에 두고 장실로 달려갔다.

까꿍까꿍 할머니랑 놀자

으엥으엥 으아아아아아으에엥

까꿍까꿍 엄마 금세 온대 까꿍꿍

화장실에서 듣고있자니 가관이었다.

애는 점점 데시벨을 올려 울고있고 전화기에서는 엄마, 우리 엄마의 딸이 볼일을 볼수 있게 필사적으로 춘이를 달래보려는 춘이 할머님의 까꿍 퍼레이드. 웃음이 나오는 동시에 저러다 숨넘어갈까 걱정 심각한 난 화장실 문을 열어놓고 응 춘이야 엄마 여깄다 쉬쉬 엄마 여깄다여깄어 금세갈께

셋이 아주 환상의 난장판 하모니였다.


태어나서 이렇게 빠른 마무리가 가능할까 신속하게 마치고 달려가 춘이를 번쩍 안고서야 이 난장판 하모니는 종료되었다.


춘이야 엄마의 요즘 최대 관심사는 니 밥과 똥이지만 그래도 어쩌다 한번은 내 똥 케어할 시간은 주지 않으련?


어느 육아선배?가 아기띠하고 큰 볼일 볼 수 있는 스킬을 얼른 장착하라고 하셨는데, 그 날도 조만간 오지 않을까 싶다.


춘이가 좀전에 눈을 흘기며 슬그머니 깼다. 닭치고 밥 달라고...꿈틀거리며 볼륨을 올리기 전에 가리다.오늘도 너 덕분에 지난날 혼똥의 즐거움과 감사함을 느낀다.






작가의 이전글 별안간 진짜 어머님이 되어버리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