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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 Jan 07. 2017

별안간 진짜 어머님이 되어버리다.

간만에 벗어던진 화이트노이즈 그리고 노래 한 곡

조리원 퇴소 후 집에 온 1주차는 정말 암울했다.

도우미 이모님이 있는 상황임에도, 호르몬과 누군가를 돌보는 것에서 오는 미숙함, 아직 정상이 아닌 몸 상태가 버무려져 아주 강렬한 시너지 효과를 내뿜었다.

낮에는 누가 말시키는 것도 귀찮고 잠만 자고 싶었고, 이모님이 가시는 해질녘이 되면 울 준비를 하는 춘이를 어떻게 달래는지 몰라 둘이 땀범벅이 되서 남편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남편과 춘이가 잠들면 춘이 얼굴을 보며 굳이 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앞날과 쓸데없는 책임감에 짓눌려 눈물이 핑 돌았다.

그래도 놓지 않았던건 호흡, 짧은 명상으로 지금 내 마음이 이렇구나 바라보는 연습이었고, 컬러테라피를 같이 공부했던 동기들의 컬러에 관란 대화들 -갖가지 색깔의 컬러바틀, 일상에 있는 컬러 사진 등등- 로 나의 주위를 환기시키는 일이었다.


그리고 어느 덧 2주차의 끝무렵이 되었다. 2주차 월요일부터 뭔가 조금 익숙해지고 몸상태도 회복중인 것이 느껴지며 조금씩 나아짐을 느꼈다. 나아짐이라기보다 갑자기 바뀐 내 현실을 조금 더 받아들인 것이라 말하는게 정확하겠다.


조동(조리원 동기..ㅋㅋ)들과 애기들 상태를 공유하며 위안도 받고 정보도 주고받고 밥도 좀더 잘 먹고 춘이도 조금 더 귀엽게 느껴졌다.


춘이에게 나의 참젖(!) 물리고 있는데 국제전화가 한통 왔다. 예전에 일했던 곳의 해외바이어에게 온 전화였는데, 내 가슴팍을 까고 젖을 물리는 상황에서 갑자기 바이어와 영어로 말하는 게 매치가 안돼너무 요상하게 느껴졌지만, 끊고는 아 맞다 내가 이런 일을 했던 때도 있었지 짧게 생각하고는 다시 춘이 입에 밥이 잘 들어가도록 밥통 위치를 고쳐잡아주었다.


춘이 밥을 주며 티비를 보는 여유도 생겼는데, 어느 날 김윤아가 나와 '꿈'이라는 노래를 열창하고 있었다.

세상에 이 노래 한 곡이, 그동안 직장생활을 하며 억지로 잠재운 나의 감수성이 출산 호르몬과 맞물려 나의 뇌를 완전히 흔들어놓았다.

이 감수성이라면 난 지금 고흐보다도 더한 명작을 남길 수도 있겠어! 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춘이때문에 지금 내가 세상 돌아가는 일에서 한발짝 물러나있는게 아니라, 춘이 덕분에 할 수 있는 이 모든 경험들이 앞으로 내가 컬러테라피스트로의 제 2막을 열 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며, 세상을 더 깊게 이해할 것이라는 확신이 다시 한번 들었다. 임신때부터 이 생각은 많이 했지만 출산 후 잠시 잊고 호르몬의 노예가 되어버렸는데 이 노래 한곡이 다시 저장되있던 내 기억을 깨웠다.


불꺼진 새벽, 코고는 남편과 코딱지가 왔다갔다 하는지 코고는 것처럼 들리는 춘이의 숨소리를 뒤로 한채 열번은 넘게 이 노래를 따라 부른 것 같다.


노래 한곡을 이렇게 깊게 들을 수 있는 지금의 불안정한 심신 상태에 감사까지 하며, 임신 때 만삭까지 그렇게 열심히 마음공부하러 다닌 게 헛되지 않음을 느꼈다.


잘하고 있어. 그리고 지금 넌 정체되어 있는게 아니라 그 어느때보다 앞으로 쭉쭉 나아가고 있어. 앞으로도 그 큰 팩트만 잊지 않으면 문제 될 거 하나도 없어.


오늘밤은 춘이를 위한 화이트노이즈 물소리 대신 노래 한 곡과 함께 불금을 즐기련다.


때로 너의 꿈은
가장 무거운 짐이 되지
괴로워도 벗어 둘 수 없는 굴레
너의 꿈은
때로 비길 데 없는 위안
외로워도 다시 걷게 해 주는

때로
다 버리고
다 털어버리고
다 지우고
다 잊어버리고
다시 시작하고 싶어

때로 너의 꿈은
가장 무서운 거울이라
초라한 널 건조하게 비추지
너의 꿈은
때로 마지막 기대어 울 곳
가진 것 없는 너를 안아주는

간절히
원하는 건 이뤄진다고
이룬 이들은 웃으며 말하지
마치 너의 꿈은 꿈이 아닌 것처럼

소중하게 품에 안고 꿈을 꾸었네
작고 따뜻한 꿈
버릴 수 없는 애처로운 꿈

너의 꿈은
때로 무거운 짐이 되지
괴로워도 벗어 둘 수 없는 굴레
너의 꿈은
때로 비교할 데 없는 위안
외로워도 다시 한 번 걷게 해주는
간절하게 원한다면 모두
이뤄질 거라 말하지 마
마치 나의 꿈은
꿈이 아닌 것처럼

마치 나의 꿈은
꿈이 아닌 것처럼

김윤아 '꿈'
춘이가 울다 지쳐 쓰러져 자는 틈을 타 일탈하고 있는 우리집 큰아들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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