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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 Dec 13. 2016

별안간 진짜 어머님이 되어버리다.

#1.조리원 입소 1일차. "눈물이 날땐 휴지를 볼에 붙이고 닦아라."

올해 초, 갑자기 백수 주부가 되버리고 동네 가게에서 어머님이라는 호칭땜에 분개했었더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혀 예상치 못하게, 정말 별안간 임신을 했고, 백수주부로서 한 계단 한 계단 적응해나가며 새로운 일을 도모하려고 하던 나의 모든 계획은 한 방에 뒤죽박죽 엉키고 스톱되었다.


나의 좌충우돌 임신기와 이전의 직장생활에서의 에피소드들을 기록으로 남기려 했으나,,,,,,,난 계획에없던 임신으로 내 정신을 붙들기에도 시간이 모자라, 어느새 지금 조리원에서 이 페이지를 열어보게 되었다.

과거는 틈나는대로 (틈...이 생길까...)기억나는대로 기록해두기로 하고, 일단 조리원 생활부터라도 기록하자.


조리원 입소 1일차.


춘이(태명)가 40주가 넘도록 전혀 뱃속에서 나올 기미도 안보이고 머리는 누구 닮았는지??크고 나는 속골반이 좁다하여 막판까지 엄청난 고민 끝에 제왕절개 하기로 함. 출산 역시도 계획과 다르게..ㅎㅎ

그리하여 병원 입원실에서 6박 7일을 보내고 바로 앞 조리원으로 이동.


첫날 와서 조리원 안내를 받는데 설명이 10분이 넘어가자 하품 대방출..듣고 싶고 알고 싶은데 자꾸 하품 방출. 이러다 나중에 책도 한장 못 읽는 게으름뱅이 바보가 되는게 아닌가 속으로 쓸데 없는 걱정을 함.


방에 짐 놓고 위 식당가서 첫 점심을 먹으러 배 부여잡고 어기적어기적 걸어 올라갔는데 오 마이 갓, 여대 기숙사 같은 분위기.

모두 똑같은 옷을 입고 자신있는 쌩얼에 출산, 애기 얘기를 하며 단체로 식사 하는 모습이 낯설었다. 우리 테이블은 다들 입소 첫 날 프레쉬맨들이라 조용히 앉아서 적응 중인듯 보였고 나 역시 밥을 뜨는 둥 마는 둥 하곤 방으로 내려왔다.

수유를 했나 안했나 벌써 가물거리는데,,,,,암튼...방에 남편과 둘이 있는데 눈물샘 폭발...

너무 뜬금포라 내가 울면서도 당황. 분명 눈물은 내가 흘리고 있는데, 내가 나를 보며 '얘 왜이러지?'

근데도 멈출 수가 없었다!!!

밑에 곧 친척들이 면회를 위해 도착할 예정이어서 눈물을 막 닦고는 내려갔다. 참 난 가족한테 살갑지 못한 성격인데 그래도 여기까지 다 와주고 다 같이 춘이 보며 기뻐하니 마음이 좀 나아졌다. 어머, 가족의 힘인가...하고 흐믓해 있는데 조리원 이모님이 산모 힘들다고 얼른들 가시라 해서 남편 포함 다 저녁 먹으러 이동하고 난 다시 방으로 캄백. 시간이 좀 늦어져서 방에서 혼자 저녁을 먹는데 갑자기 또 2차 눈물샘 폭발. 2차 당황.

마침 누군가 나 주라고 놓고 간 빵을 건네주러 온 조리원 실장님께 딱 걸림. 서로 어색하게 멀쩡한 척 하다 나가시자마자 다시 제대로 눈물샘 폭발.

밥을 먹어야 춘이 밥을 잘 줄 수 있어서 억지로 씹어삼키는데 다른 조리원 이모님 등장.

아마 실장님이 관심사병 한 명 있으니 가보라고 지시하신듯....

우는 날 보고 원래 그런거라며 위로해주셨다.

"지금은 몸도 감정도 비정상 상태라 당연한거에요."

"아 네. 훌쩍훌쩍 흑흑."

"근데 앞으로도 울 일 많으니 눈물 날 땐 휴지로 눈을 비비지 말고 요렇게 볼에 붙여서 살살 흐르는 눈물만 닦아요. 운다고 막 눈 비비면 엄청 붓습니다. 한 번 해 봐요."

눈물 흘리랴 밥 먹으랴 볼에 휴지 붙이랴 바빴다.


조리원 천국이라더니 몸은 쑤시고 배는 아프고 가슴도 아프고 수유콜은 왜이리 빨리 돌아오는지..춘이도 나도 수유에 익숙치 않아 수유 한번 하면 땀은 비오듯 쏟아지고...


저녁먹고 돌아온 남편은 약간 들떠서 춘이가 너무 이쁘고 어쩌고 저쩌고 어인일로 재잘재잘 하는데 난 앞으로 시작될 육아에 대한 두려움에 순간 압도되어 3차 눈물..

한동안 임신 기간 내내 나를 지켜줬고, 또 내가 좋아하는 컬러테라피 일을 시작도 할 수 없을거란 생각에 '난 하루 죙일 잡에 갇혀서 야기만 보다가 밥먹고 쇼핑하고 차마시는거 별로 관심 없단 말이야~~.' 갑자기 뜬금포 던지며 애처럼 또 질질 울었다.


그러면서도 춘이 얼굴은 계속 눈 앞에 아른거렸다.


그날 밤,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었고, headspace앱을 열어 10분 명상을 하며 내 마음을 잠시 지켜보았다. 호흡에 집중하며 임신 기간 동안 새롭게 만난 코랄빛이 주는 에너지에 집중하며, 귀여운 춘이 얼굴도 떠올리며 그냥 지금 모든게 다 처음이고 인생일대 격변기의 첫 날이기 때문에 당연한거라 위로했다. 이윽고 좀 전에 춘이가 클 동안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이 스톱될거라는 생각이 조금 걷히고, 결코 춘이의 성장과 나의 성장이 따로 가지만은 않을 것 같단 느낌이 슬며시 들었다.


그렇게 조리원에서의 첫 날밤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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