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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 Dec 13. 2016

별안간 진짜 어머님이 되어버리다.

#2. 조리원 2일차. "누군가에게 밥을 주기 위해 밥을 먹다."

새벽부터 울리는 수유콜에 알람을 맞출 필요가 없어서 좋았...다..!하핫..


비몽사몽 잠은 자는둥 마는 둥 하고 일어나 춘이를 데릴러 신생아실로 향했다. 어제 울고 짜고 하더니 춘이 얼굴을 보는 순간 엄마 마소가 절로 지어졌다.


미숙한 수유자세로 미숙하게 춘이를 안고 미숙하게 젖을 물렸다. 아직 갓 태어난 아기라 기껏해야 십분 먹이면 잠이 들지만 그 십분이 한 시간 같다. 분명 며칠전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수유 아닌 첫 수유를 하고 감동받아서 이것이 바로 엄마의 기쁨이구나! 했었더랬다. 하지만 이젠 진짜 제대로 먹어줘야 추닝 황달도 빨리 낫고 나도 안아프게 되는 '실전' 1단계란 말이다.


아주 찔끔 눈을 다시 붙이고 아침을 먹으러 다시 올라갔다. 하루 지났다고 식당이 여대 기숙사 같이 보여도 낯설지 않았고, 또 같이 들어온 사람들과 간 밤 얘기를 하며 여전히 밥맛은 없지만 우걱우걱 먹었다. 나만 운 건 아니었드라...하핫 그놈의 호르몬 임신때도 호르몬 수유때도 호르몬...갱년기때도 호르몬이겠지?


아침을 먹고 왔더니 기다렸다는 수유하시겠어요? 콜이 왔다. 다시 춘이와 씨름. 이 와중에 교감은 꼭 하겠다며 한손으론 춘이를 잡고 한 손으론 허우적대며 핸드폰을 겨우 찾아 클래식을 틀어놓고 목이 빠져라 춘이를 쳐다보았다. 귀엽고 좋긴 너무 좋았다.

근데 미숙한 자세때문인지 요 며칠 계속 목이 너무 아프다.

그렇게 두어번 씨름을 더 하고 다시 점심.

나를 포함해 모두 애기 상태, 조리원 상태, 출산 얘기등을 쏟아내기 바빴다. 입으론 밥을 먹고 목으론 얘기했다. 그러고는 밥을 먹자마자 각자의 임무를 수행하러 방으로 방으로 착착 돌아갔다. 분명 직장생활에서의 점심이건, 누구와 수다를 떨던 점심먹으면 이차로 차마시며 또 다른 장이 펼쳐지는데 여기서는 군대같이 밥 다먹으면 칼같이 임무 수행하러 돌아가야한다!


내 방 창을 통해 햇살이 쏟아져 내리자 한결 더 여유로워졌다.

수유를 마치고 매일 오후 2시부터 3시까지 있는 모자동실시간에는 춘이 사진을 요리 찍어보고 저리 찍어보고 같이 셀카도 찍었다.


수유를 더 하고 서비스 마사지를 받고 샴푸 서비스도 받아 한결 개운했다.

다시 와서 저녁을 먹고 임무 수행. 수유하고 유축해서 갔다주고 하니 남편 퇴근. 아홉시가 다되도록 저녁도 못먹고 여기서 찬 음식으로 먹는걸 보니 짠했지만 지금은 나도 죽겠는지라 빨리 먹고 춘이한테 목소리 들려주라고 닦달함..^^;

하루 종일 얼마나 보고 싶었겠나 나같아도 그럴테니 그런 김에 이제 남편님이 좀 안아주라며 패스하곤 침대 뒤에 기댔다.


여유로워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수술 후 몸도 회복이 안됐고 나름 빡쎈 일정이라 갑자기 너무 피곤해졌다. 여긴 천국이야 되뇌어도 내 몸은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 있는 함껏 유축해서 갔다주고는 난 밤에 이제 좀 잘꺼라며 다음 날 5시 이후에 전화달라고 하곤 방에 돌아와서 처음으로 티비도 아주 잠시 보고 남편과 얘기도 아주 잠시하곤 호흡을 고르고 잠을 청했다.

여전히 한참 뒤척이다 든 잠속에선 다양한 악몽들이 이어졌지만..^^


아직까진 발가락 길이와 눈 가로길이만 닮은 듯 보이는 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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