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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 Dec 21. 2016

별안간 진짜 어머님이 되어버리다.

#5. 조리원 10일차. '가슴은 뭐다? 밥통이다.'

오늘 오전 '모유수유 이론과 실제' 교육을 했던 조리원 원장님의 얘기다.


조리원 동기?들과 식후 수다의 주제는 수유->아기 걱정-> 출산 에피소드-> 임신 기간-> 남편 스타일-> 연애기간 등등 점점 아기에서 우리 자신의 얘기로 옮겨가며 여자로서의 자신을 찾으려 하는 듯 보였다.

그러던 와중 모유수유 교육을 받고( 왜 나갈때 다되서 하는지 이해안되지만;;) 다시 초보엄마모드 장착.

수유시 통증, 아기가 빠는 시간, 유축양, 수유간격 등등등 수유에 관련된 얘기는 해도해도 끝이 없었다. 누군가 '조리원에 있을 땐 그냥 분유 맥여~'정도 해야 잠잠해지는..


나에게도 모유수유는 가장 충격적이고 파도파도 심오한 세계다. 그리고 미리 공부안한 걸 많이 후회한 분야였다.

일단 가슴을 바라보는 관점이 토털리 바뀌었다.

생각나는 것만 일단 적으면,

유두가 짧으면 보기에만 이쁘지 아기 밥주는 본연의 역할은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개살구 같은 존재인지 처음 알았고, 젖양은 너무 많아도 너무 적어도 문제였다. 그리고 유륜 역시 너무 넓지도 좁지도 않아야 했다. 수유를 하기전 춘이가 먹기 좋게 스무스하게 나오라고 가슴을 탈탈 털어야했고, 춘이 밥으로 입구를 문질문잘해서 자체 소독도 해줘야했다.

수유 자세도 요람자세, 풋볼자세 등등 다양했고 수유쿠션, 발판 등등 보조 도구도 여러가지 필요했다.

조리원 동기?들은 수다를 떨다가도 젖 도는 느낌이 나면 아무렇지 않게 가슴을 주물주물 대며 수다를 이어간다.

가슴이 작은 사람은 괜히 가슴이 작아 아기가 젖을 잘 못먹는거 아니냐며 한숨 쉬고, 큰 사람이라도 젖양이 부족하면 근심 어린 얼굴로 어제 분유병 주문했다며 한탄했다.

조리원 원장님 말대로 가슴은 말그대로 아기에게 밥을 주기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다. 밥....통.....


나 역시도 밥통 관리에 나의 신경의 90%가 가 있다. 사실 이건 생각보다 매우, 꽤 스트레스 받는 일이어서 유축할 때 명상을 더 빡쎄게 하고 있다. 컬러테라피를 함께 공부했던 멤버가 심신의 안정이 필요한지 어찌 알고 그린빛의 에너지가 담겨있는 음악을 보내와서 당장 틀고 심호흡하며.......밥을 짜내고 또 짜내고 직접 먹이다가 실패하고 다시 명상하고 스트레스 받지말자말자 되뇌이며 춘이 얼굴 한번 바라보고..다시 시작하고....이렇게 테라피가 계속 필요할 정도로 조리원 10일차 초짜에게는 너무나 힘겹고도 또 제일 중요한 일상이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산모님, 수유하시겠어요?" 언제나 같은 톤 같은 멘트와 함께 울리는 같은 전화벨 소리가 날 찾을까봐 약간 조마조마하다.

아직 첫째 있는 맘들처럼 걍 분유 맥여! 이런 여유가 없다. 일단 자연의 흐름에 충실하고싶은 마음에 춘이에게 최대한 자주 집밥을 주려고 노력하는데........아직은 춘이와 합을 맞춰가는 과정이라 그런지 마이 힘들다.


언제쯤 꿀떡거리며 2-30분씩 자알 먹고 꺽 트림을 하고 평화롭게 잠드는 춘이를 볼 수 있을까.


오늘도 춘이 밥통은 춘이를 하염없이 기다린다. (하 웃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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