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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hyo Nov 10. 2024

나의 즐겨찾기

서른의 아지트

오랜만에 햇빛을 보았다. 빨간 페인트로 덧칠해진 건물 안에서 일주일 내내 지내온 환경은  정말이지 곤욕이었다. 새벽부터 출발해 아침부터 오후까지 머문 빨간 건물 안에는 오롯이 형광빛이 전부였다. 가끔 창밖을 볼 때면 이곳을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 네가 즐겨 찾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여름에서 겨울로 바뀌어 가는 탓인지 요즘은 해가 빨리 저물었다. 게다가 부쩍 추워진 날씨 탓에 잠이 더 많아졌다. 잠을 이겨내고 이곳까지 나와 뒤늦게 공부와 다시 씨름하고 있는 나를 보면 안쓰럽기도 하고, 여러 가지 감정이 들곤 했다. 복잡 미묘한 감정들을 벗어나 하루빨리 그곳으로 가고 싶어졌다.


오랜만에 가게 된 그곳은 언제나 한결같았다. 스무 해 넘게 다녀와도 질리지 않고 상쾌했다. 이곳을 돌아다니며 항상 내 곁을 스쳐 지난 사람들을 보곤 하는데, 그 사람들 역시도 언제나 한결 같이 걷고 있었다. 스무 해 넘게 인사를 하지 않고 그저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인데도 과연 나를 알아보기는 할까. 인사는 하지 않지만 길을 걷다가 우연히 쳐다보는 것으로 대신 인사를 전해 보기도 하였다. 무엇보다 정말이지 반가웠던 것은 눈부시게 빛나는 햇살이었다. 어찌나 쨍쨍하던지 눈을 뜨기가 어려웠지만 따뜻했다. 처음 차에서 내렸을 때는 추웠다고 느꼈는데, 따사로운 햇빛과 함께 걷다 보니 어느새 추위는 누그러졌다. 따뜻한 햇살 아래 아무 생각 없이 길을 걷고 있으면 그동안 생각지 못한 새로운 생각들이 떠오르곤 한다. 그동안 잊고 지내던 주변인의 안부와 소식 등이 궁금해지거나 오늘 하루는 무엇을 하며 보내야 할지 등 여러 가지 생각이 오고 가다 보면 어느새 한 시간이 넘어 있었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다시 정면을 바라보다 어깨를 펴고 고개를 들어 하늘과 단풍잎을 올려다보면 굳어진 목과 잔뜩 긴장되어 힘이 들어간 어깨를 조금이나마 힘을 뺄 수 있었다. 그동안 네가 얼마나 긴장되어 살아왔는지, 우물 안에 개구리처럼 한 공간 안에서 울고 웃으며 고생해 온 나에게 위로가 필요했음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그 위로를 네가 즐겨 찾는 곳을 통해 받을 수 있었다. 흔히들 그곳을 어릴 때는 ‘아지트’라고 말했다. 나에게도 물론 아지트가 있다. 그곳이 곧 네가 즐겨 찾는 곳이다. 네가 즐겨 찾는 곳에 사람들과 함께 초대하여 가보기도 하였는데, 힘들다며 다들 한 번 오고는 오지를 않았다. 그도 그런 것이 그것도 취향이 있는 것 같았다. 누군가에는 아지트, 즐겨찾기가 PC 방이 될 수도 있고 여러 가지 공간이 있을 수 있다. 이상하게 이곳에 오면 난 늘 스트레스가 풀어지고 무척이나 행복함을 느꼈다. 그도 그런 것이 소모임 어플을 통해 나가게 된 ‘명상’ 모임에서 알게 된 것이 있다면 각자가 선호하는 공간에서 명상을 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됟다고 하였다. 명상이라는 것은 꼭 눈을 감고 해야만 명상이 아니다. 아무 생각 없이 걷는 것도 명상이 될 수도 있었다. 생각 중독, 과잉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때마다 난 나의 즐겨찾기를 통해 생각을 조금이나마 덜어내고 심플하게 생각하고자 했다. 오히려 덜어냄으로써 새로운 것들이 채워졌다.


길을 걷다가 보며 사람들의 여러 가지 표정이 보였다. 근심이 가득하거나 모자를 푹 눌러쓴 채 고개를 떨구며 걷거나 등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한 소년이었다. 길을 걷고 있는데, 호숫가 주변으로 붉게 물든 단풍나무를 보며 환하게 미소 지으며 홀로 산책을 즐기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왠지 모를 안쓰러움이 느껴졌다. 요즘 유튜브에서 티쳐스 등을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대부분의 부모님들이 의대를 목표로 아이에게 학업을 강요하며 몰아붙이는 장면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한창 밖에 나가 뛰어놀고 싶을 나이에 일찌감치 수용소 같은 건물에 갇혀 강요된 학업을 이어나가는 아이들을 보니 마음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공부 외에는 많은 선택권이 없다는 현실이 가장 안타까웠다. 맹목적으로 공부하는 것은 정말이지 끔찍한 일이기 때문이다. 명확한 목표와 의지를 갖고 해도 쉽지 않은 것이 공부인데, 그것을 강요받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힘들 수밖에 없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소년의 모습을 스쳐 지나가듯 본 난 이윽고 발길을 돌려 토스트 가게로 왔다. 햄버거보다도 토스트 가게가 좋았다. 아는 것이 병이라고 ‘질산염’이 들어있는 소시지는 패티에서 뺄 수 있는 고민도 하고, 커피는 라테가 없어 옆 커피집에서 사 와 햇빛이 잘 드는 벤치에 앉아 브런치를 즐겼다. 아무리 비싼 브런치를 먹어도 인위적인 공간 안에서 먹는 브런치는 그저 그랬는데,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먹은 브런치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고 맛있었다.


더 늦기 전

따사로운 햇빛과 알록달록 풍경이 만들어낸 자연의 식탁에서 맛보는 토스트와 커피 한잔 어떠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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