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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효 작가 Jan 04. 2022

신비의 약수가 기다리는 광양 백운산

2월 첫째 주 남도여행

2월은 참 애매하다. 얼굴을 스치는 바람은 여전히 겨울 칼바람인데 마음속은 몽글몽글 봄의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겨울과 봄 사이, 계절을 앞서는 여행은 색다른 재미와 즐거움을 선사한다. 특히 2월의 백운산은 특별한 봄 손님이 기다리고 있어서 해마다 놓치지 않고 찾는 여행지다.


광양 백운산은 소백산맥에서 뻗어 나온 호남의 명산이다. 서쪽으로는 도솔봉·형제봉(1,125m), 동쪽으로는 매봉(867m)을 중심으로 4개의 지맥을 가지고 있으며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지리산과 남북으로 마주보고 있다. 무엇보다 일 년 내내 계곡 물이 마르지 않는 산으로 다압면 금천리로 흐르는 금천계곡, 진상면 수어저수지로 흐르는 어치계곡, 도솔봉 남쪽 봉강면으로 흐르는 성불계곡, 옥룡면의 젖줄인 동곡계곡까지 4대 명품 계곡을 품고 있다. 그래서일까. 남한에서는 한라산 다음으로 식생이 잘 보존돼 있어서 자연생태계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백운란, 백운쇠물푸레, 백운기름나무, 나도승마, 털노박덩굴 같은 희귀식물을 포함해 9백여 종의 식물과 나무들이 백운산을 터전 삼아 살아가고 있다. 특히 단풍나무과에 속하는 고로쇠나무는 봄이면 수액을 채취하는 귀한 나무로 우리에게 신비의 약수를 내어준다.


입춘이 지나면 고로쇠 수액이 나오기 시작해서 음력 설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채취가 이뤄진다. 겨우내 얼었던 산과 계곡이 녹으면 고로쇠나무에 물이 돌기 시작하는데 이맘때 나오는 고로쇠 수액이 약수다.

하늘이 내린 신비의 약수라고 알려진 백운산 고로쇠 수액은 풍수지리 대가인 도선국사와 인연이 깊다. 도선국사가 광양 백운산에서 도를 깨우치기 위해 가부좌를 틀고 수양을 하다가 일어서려는데 무릎이 펴지지 않아 옆에 있는 나뭇가지를 잡은 순간 나뭇가지가 부러지면서 수액이 떨어졌다고 한다. 도선국사가 그 수액을 받아서 마신 후에 곧바로 일어설 수 있었다고 해서 뼈에 이롭다는 의미로 골리수라 불렸고 지금의 ‘고로쇠’가 되었다고 한다.


< 광양 백운산 고로쇠나무 수액 채취 >

광양 백운산에서 맛볼 수 있는 고로쇠 수액은 해발 1,000m 이상의 고지대에서 자라는 고로쇠나무에서 채취하는데 허가를 받은 마을 주민들만 채취가 가능하고 기간과 양이 정해져 있다. 한마디로 리미티드 에디션(limited edition) 약수인 셈이다. 시원하면서 달큰한 맛이 특별하고 칼슘과 마그네슘이 풍부해서 여러 잔을 마셔도 질리지 않는다. 고로쇠 수액을 마실 때는 3일 동안 18리터(한 말) 정도 마시면 몸에 잔병이 생기지 않고 여름 더위를 타지 않으며 뼈가 아픈 데 일정한 효험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백운산 구경도 하고 몸에 좋은 약수도 마실 수 있어서 2월 백운산에는 늘 여행자들로 북적인다.


광양 백운산에는 고로쇠만큼 특별한 봄 손님이 있다. 바로 동백이다. 백운산 자락이 이어진 옥룡면 백계산(505m)남쪽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동백숲이 기다리고 있다. 동백숲이 자리한 터는 옛 옥룡사지가 있던 곳이다. 신라 말기에 도선국사가 35년 동안 머무르며 수백 명의 제자를 가르치다 입적한 곳으로 한국 불교역사에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불교성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신라시대를 주름잡던 옥룡사의 모습은 이제   없다. 군데군데 남아있는 주춧돌들만이  곳이 사찰 터였음을 짐작하게   뿐이다. 도선국사와 그의 수제자인 통진대사를 기리는 비와 탑도 1920 즈음에 모두 없어져 버렸다. 대신 도선국사가 옥룡사를 중수할 당시에 주변 땅의 기운을 보강하기 위해 심었다는 동백나무 숲은 남아있다. 옥룡사지 터를 중심으로 동백나무 7천여 그루가 7ha 거쳐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수백  이상 터를 지켜  아름드리 동백나무가 우거져 있는 풍경이 여수 오동도 동백숲과 비슷하다. 오랜 세월을 버텨온 나무지만 땅의 기운이 좋아서 그런지 옥룡사지 동백꽃은 크고 화사하다.

옥룡사지 주변의 숲길을 따라서 산책로가 마련돼 있어서 동백꽃을 길동무 삼아 둘러보기좋다. 지금껏 옥룡사가 남아있었다면 금상첨화였응 텐데, 아쉽지만 그래도 도선국사가 고르고 가꾼 명당 터라고 하니 좋은 기운도 받을 , 고로쇠 마시고 오는 길에 옥룡사지 터를  바퀴 돌아보는 건 어떨까.


광양 백운산 고로쇠 수액은 충분히 시간을 갖고 공들여 오래, 그리고 많이 마시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짭조름한 음식이 제격이다.

광양은 예로부터 숯불구이가 유명하다. 그중 최고의 일미는 청동화로에 참숯을 피워 구리석쇠에 구워  ‘광양불고기 꼽을  있다. ‘천하일미 마로화적답게 매년 가을이면 아름다운 광양 서천변을 배경으로 ‘전통숯불구이축제 열릴 정도로 전국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광양의 별미다.

최근에는 닭과 염소의 살코기만 양념에 재워 참숯에 구워 먹는 숯불구이가 한우만큼 사랑받고 있다. 쫄깃쫄깃 씹히는 살코기에 단짠단짠(달콤하고 짭조름한)한 양념, 여기에 참숯 향까지 더해진 광양표 숯불구이는 고로쇠 수액과 환상의 궁합을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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