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넷째 주 남도여행
벌써 10월의 마지막 주다. 왠지 뭔가 해야 할 것만 같은 10월의 마지막 밤, 어디로 떠나야 잘 갔다고 소문이 날까. 사계절 중에 가을은 낮만큼 밤이 아름다운 계절이다. 10월의 마지막 밤을 좀 더 진하게 보내고 싶다면 차박 여행을 떠나보자.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 때 언제라도 훌쩍 떠날 수 있다는 점이 차박의 최대 강점이다. 굳이 캠핑용 자동차를 구입하지 않더라도 평소에 타고 다니던 자동차를 이용해 편하게 즐길 수 있는데, 좌석 평탄화 같은 개조 과정을 거치지 않고 에어매트나 휴대형 발전기 같은 장비들의 도움을 받으면 누구나 쉽게 도전해 볼 수 있다.
차박 여행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이미지는 아침에 일어나 차 트렁크를 열었을 때 눈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들이다. 눈 뜨자마자 탁 트인 바다나 오색 단풍으로 물든 숲이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물론 캠핑 고수들은 사람이 거의 찾지 않는 오지 차박을 선호하지만 차박 초보자들은 일단 바다나 강이 보이는 곳으로 가는 게 좋다. 지역마다 해수욕장이나 강 주변으로 오토캠핑장이 많이 마련돼 있어서 차박지로 그만이다. ‘차박인데 가고 싶은 곳으로 가면 안 될까?’ 싶지만, 오토캠핑장으로 가야 화장실이나 개수대 같은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고 전기나 화롯대 사용까지 가능하니까 차박 초보자들이 불편함 없이 즐겁게 지낼 수 있다.
유튜브 같은 SNS에서 소개되는 차박 영상 중에서 가장 많은 ‘구독’과 ‘좋아요’를 받는 곳이 바닷가다. 그만큼 차박 마니아들이 가장 사랑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바닷가 하면 여름 피서지로만 생각할 수 있는데 사실 가을·겨울 캠핑에 바닷가만큼 좋은 장소도 없다.
자동차에 여행가방을 싣고 시동을 걸었다면, 남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다가 기다리는 완도 명사십리로 달려보자. 모래 울음소리가 십리나 들린다는 명사십리는 이름 그대로 끝없이 펼쳐진 은빛 백사장이 4km에 달하고 가을에 더 예쁜 쪽빛 바다와 캠핑 여행에 필요한 편의시설까지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 해수욕장을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해송숲 안쪽으로 오토캠핑장과 카라반 시설이 들어서 있고 그 주변으로 차박이 가능한 공터들이 마련돼 있다.
황금들판에서 오곡백과가 결실을 맺는다면 가을 바다는 황금어장이다. 가을의 명사십리는 낚시 좋아하는 이들이 사랑하는 ‘핫’스팟이다. 백사장이 끝나는 곳에 갯바위 지대가 자리 잡고 있는데, 마음에 드는 갯바위를 하나 골라서 낚싯대를 드리우면 돔·농어·광어 같은 실한 물고기들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물론 손맛의 행운은 그때그때 달라서 허탕을 치기도 하지만 꼭 물고기를 잡아야 맛일까, 가을 바다를 친구 삼아 세월을 낚는 것도 뜻밖의 힐링이 된다.
차박 여행자들에게 바닷가만큼 사랑받는 차박지가 강변이다. 오랜 세월 동안 남도 땅을 적시며 흘러온 섬진강은 강변 곳곳이 차박 여행의 성지로 인기가 뜨겁다. 전북 팔공산에서 발원한 섬진강이 광양만까지 흘러가는 동안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품은 곳이 곡성이다. 특히 곡성 보성강이 섬진강과 만나는 곳에 자리한 압록유원지는 넓은 강변과 수려한 풍경으로 예부터 곡성 주민들의 쉼터로 사랑받던 곳이다. 낮에는 강변 단풍을 구경하며 물놀이를 즐길 수 있고 밤에는 물소리,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며 차박의 낭만을 즐길 수 있다.
가을에 곡성을 찾았다면 꼭 먹어야 할 음식이 있다. 팔도 밥상부터 커피까지 한없이 넓은 식견을 보여주는 허영만 화백이 만화 <식객>에서 수박 맛이 난다고 했던 섬진강 은어가 가장 맛이 좋을 때다. 민물고기 특유의 흙냄새가 나지 않고 고소하면서 시원한 수박 맛이 나는 은어는 튀김이나 탕으로 즐기면 좋은데 들깨가루를 듬뿍 넣은 은어들깨탕은 가을 보양식으로 그만이다.
압록유원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석곡에는 역사 깊은 곡성 별미가 있다. 얇게 저민 돼지고기에 매콤달콤한 고추장 양념을 발라서 숯불에 구워먹는 석쇠불고기다. 돼지고기 특유이 잡냄새 없이 쫄깃쫄깃하면서 말캉말캉 씹히는 식감에 불향까지 입혔으니 그 맛이 어떠할까. 생각만으로도 군침 돌게 만드는 곡성표 밥도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