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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지현 Dec 09. 2021

들어는 봤나, 젊은 꼰대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한 노력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회사에 다닌 지도 3년 차에 접어들었다. 제법 일이 많아졌고, 출장 다니는 일이 잦아져서 한창 바쁜 시기였다. 2년 차까지만 해도 종종 외부 교육이나 세미나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때는 일이 많아서 1년간 그런 건 신청도 못 하고 일만 했다. 이맘때 팀에 신입사원 후배들이 몇 명 들어왔다. 입사 2년 차에 팀에 첫 후배가 들어왔을 땐 관심도 많고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한창 바쁘던 3년 차에 후배들이 들어왔을 땐 그렇게 많은 관심을 줄 여유가 없었다. 그 당시 꽤 주목받고 있던 우리 프로젝트에는 신입사원이 세 명이나 투입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교육을 맡았다.


약간 의아했던 건 신입사원들이 우리 팀에 아예 배정된 게 아니었고, 한창 일이 많은 1년 동안만 우리 팀에서 일하다가 그 후에는 다른 팀으로 배정될 예정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후배들에게 일을 가르쳐 주면서도 1년 후면 떠날 사람들이라는 생각에 종종 허무감을 느꼈다. 그리고 이 1년이라는 시간제한 때문에 장기적으로 진행되는 일이나 출장을 가서 해야 하는 일은 넘겨줄 수도 없었다. 결국 그런 궂은일은 여전히 내가 맡아서 하고, 후배들에게는 사무실에서 쉽게 할 수 있는 업무 위주로 가르쳐줬다. 그러고 나니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다 후배들에게 넘겨주고 나는 그다지 하고 싶지 않은 일만 하게 되었다. 차라리 한 명이라도 우리 팀에 남게 해 주시지 윗분들은 왜 신입사원 팀 배정을 이렇게 하신 건지 의문이 들었으나, 원래 회사에는 이해가 안 되는 일들 투성이다.


그래도 후배들이 내 교육에 잘 따라와 주고 일을 조금씩 배워가는 모습을 보면 보람을 느꼈다. 아직 모르는 게 많지만 열심히 하려고 하는 모습이 참 좋아 보였다. 이전까지는 내가 일을 배우는 것 위주였는데 이제 나도 가르쳐줄 수 있는 처지가 되었다는 게 뿌듯하기도 했다. 하지만 모든 후배가 잘 따라와 준 건 아니었다. 그중 유독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는 것 같은 후배가 있었다. 똑같은 일을 줘도 그 후배가 낸 결과물은 성의 없이 한 게 티가 났다. 출장이나 궂은일은 내가 다 맡아서 하면서 후배들에겐 좋은 일만 넘겨주는데, 그 후배가 이런 식으로 일을 대한다는 게 이해가 안 됐다. '나라면 안 그럴 텐데'라는 생각이 치고 올라올 때쯤 동기들과 젊은 꼰대에 관한 대화를 나눴다.


"젊은 꼰대라고 들어봤어? 요즘은 20대 중에도 꼰대가 많대."


한 동기가 이런 얘기를 했다. '꼰대'만으로도 거부감이 드는데 '젊은'과 '꼰대'의 안 어울리는 조합이라니. 후배보다 별로 경험도 많지 않으면서 꼰대질을 한다는 건가? 생각만 해도 싫었다. 아무리 후배가 못마땅해도 이 끔찍한 '젊은 꼰대'만은 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때부터 동기들과 나는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서로서로 검열을 해주었다.


"후배랑 이런 일이 있었는데 나 그 후배한테 뭐라고 하면 꼰대야?"

"응 꼰대야."


생각보다 꼰대가 되지 않는 일은 쉽지 않았다. 우리는 일상의 많은 부분에서 우리의 '꼰대력'을 실감하고 있었다. 선배보다 후배를 대하는 게 더 어렵다는 말이 그제야 이해가 갔다. 자칫하면 젊은 꼰대가 되어버릴까 두려워 조심스러워졌고, 그럴수록 후배를 대하는 게 더 불편해졌다. 다행히도 우리가 꼰대인지 아닌지의 판단은 우리의 꼰대력이 강한지 약한지에 따라 내려지는 게 아니었다. 그 꼰대력을 겉으로 드러내는지의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 어떤 말이나 행동이 꼰대 같은지 아닌지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아무리 꼰대 같은 생각이 든다고 해도 그걸 표현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우리가 꼰대인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꼰대 같은 생각이 들면 자체 검열하고 속으로 꾹 눌러 담았다.


그러나 눌러 담는다고 꼰대력이 없어지진 않는다. 다시 '나라면 안 그럴 텐데'로 돌아와 보면, 이는 후배의 입장에 나를 대입해서 내가 어떤 행동을 할지 상상하고 그걸 후배의 행동과 비교했기에 드는 생각이다. 하지만 내가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했을 거라고 해서 다른 사람도 그렇게 하라는 법이 있을까? 내가 좋아하는 일을 후배에게 넘겨줬다고 해서 후배도 그 일을 좋아하라는 법이 있을까? 그 후배는 그 일이 정말 싫었을 수도 있고, 티를 안 내려고 노력하다 어쩔 수 없이 티가 난 걸 수도 있다. 1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라며 다른 팀으로 배치되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을 수도 있다. 이게 사실인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실제로 그랬다고 해도 그 후배의 잘못은 아니다. 우리가 원하는 게 다를 뿐. 결국 다름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꼰대력은 조금씩 사그라든다는 걸 그때는 몰랐지만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그래서 이제는 '나라면 안 그럴 텐데' 대신 이렇게 생각해 보기로 한다.


그럴 수도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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