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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지현 Dec 23. 2021

영국으로 향하는 첫걸음

왜 영국이라는 나라, 그리고 워킹홀리데이를 택했는지

영국에 살면서 가끔 어떻게 처음 영국에 오기로 결정하게 되었는지에 관한 질문을 받는다. 나는 영국식 영어 발음을 엄청나게 배우고 싶었던 것도 아니고, 해리 포터 시리즈를 보며 런던에 대한 로망을 키웠던 것도 아니었다. 내가 영국에 오기로 결심한 계기는 뜬금없게도 회사 생활 3년 차 때 간 스페인 여행이었다. 나는 첫 유럽 여행으로 많은 지인들이 극찬했던 스페인을 택했다. 처음 가는 유럽 여행인 만큼 기대를 잔뜩 하고 갔는데, 9월의 바르셀로나는 기대 이상으로 아름답고 따뜻했다. 바르셀로나의 상징인 가우디 건축 양식도 인상 깊었지만 그냥 모든 골목골목이 다 예뻤다. 신선한 과일과 거리 음식을 파는 시장, 거리에 야외 테라스가 마련된 식당들, 도시 곳곳에 있는 탁 트인 광장들까지 모든 게 너무 좋았다. 그리고 바르셀로나 이후에 간 세비야, 말라가, 마드리드, 세고비아까지 모든 도시가 각자 다 다르게 아름다웠다. 처음 경험하는 유럽의 이국적인 풍경과 도시마다 각자 다른 분위기를 가진 스페인의 다채로운 매력은 나에게 적잖은 자극을 줬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바르셀로나, 세비야, 말라가, 세고비아. 같은 나라의 도시들이지만 다 다른 나라처럼 느낌이 다르다.


여행이 끝난 뒤에도 한동안 스페인의 매력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나는 여행지에서의 경험이 좋으면 ‘여기서 살아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잠깐씩 하곤 했는데, 스페인에 다녀오고는 그 생각이 꽤 오래 머릿속에 남았다. 친한 친구 중에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통해 실제 호주에 살아보는 로망을 실현한 친구가 있었다. 호주에서 아르바이트하며 영어를 배우고 틈틈이 여행까지 하다 돌아온 친구는 그 경험이 너무 좋아서 다른 나라로 또 워킹홀리데이를 가고 싶다고 했다. 그 친구를 보고 아이디어를 얻은 나는 스페인 워킹홀리데이에 대해 찾아보기 시작했다. 마침 스페인어는 예전부터 배우고 싶은 언어였고, 다시 아르바이트부터 시작하더라도 스페인에 살면 지금보다는 삶이 즐거워질 것 같았다. 하지만 당시는 한국과 스페인의 워킹홀리데이 협정이 맺어지기 전이었으므로, 조금의 검색을 거쳐 이 아이디어는 당장 실현 불가하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아쉽지만 여행으로라도 다시 스페인에 가기를 기약하며 이 생각은 접게 되었다.


그렇게 여행의 즐거움은 점점 잊혀지고 다시 현실의 슬럼프에서 방황하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행복했던 여행의 추억을 떠올려 보고자 사진첩에서 스페인 여행 사진을 뒤척여 보았다. 아마 그 사진들을 보는 나의 표정은 아련하면서도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었을 것이다. 문득 워킹홀리데이가 다시 떠올랐다. 꼭 스페인이 아니더라도 유럽의 다른 나라에서 살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바로 검색창을 열고 유럽 나라들의 워킹홀리데이를 찾아보던 중에, 영어권 나라인 영국과 아일랜드의 워킹홀리데이가 눈에 띄었다. 그중에도 영국은 보통 기간이 1년인 다른 나라와 다르게 워킹홀리데이 기간이 2년으로 상당히 긴 편이고, 아일랜드보다 평균 연봉도 높았다. 결정적으로 이 비자로 흔히들 생각하는 아르바이트뿐 아니라 풀타임 직업도 가질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 이거구나!'


워킹홀리데이로 외국에 가면 아르바이트생으로 살아야만 하는 줄 알았는데, 영국에서 경력을 살려 개발자로 취업할 수 있는 기회가 보였다. 전에도 외국에 살아본 적이 있어서 영어는 걱정 없었다. 취업만 된다면 영국에서 2년간 개발자로 일하며 경력 단절 없이 유럽에서의 삶을 경험해볼 엄청난 기회였다. 한국에서보다 돈도 더 많이 벌고 유럽 여행도 실컷 할 수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 환상 속 영국 개발자의 삶을 그려보기 시작했다. 주중에는 유럽 각국에서 온 글로벌 인재들과 일하고 주말에는 기차를 타고 파리 여행을 가는 삶이랄까. 상상만 해도 너무 설렜다. 영국 워킹홀리데이는 슬럼프에 빠져있던 당시의 나에게 꼭 필요한 기회로 보였다.


그날로 바로 폭풍 검색에 들어갔다. "영국 워킹홀리데이 신청", "영국 직장생활", "영국 개발자 취업" 등의 키워드가 나의 검색 목록을 장악했다. 매년 1,000명에게 영국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을 수 있는 정보후원보증서(COS)를 제공하는데, 보통 이 정원의 두 배 정도가 지원을 해서 이 중 추첨으로 1,000명을 뽑는다고 한다. 그 말은 이론상 내가 지원하면 당첨될 확률이 50%라는 거지만, 블로그에서 본 어떤 분은 무려 네 번을 떨어지고 다섯 번째에 붙었다고 한다. 과연 내가 한 번에 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그런 걱정은 접고 일단 지원서를 넣었다. 지원서를 넣은 것만으로도 기분이 벅차올랐다.


영국 워킹홀리데이에 지원하고 합격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한 달 정도가 걸린다. 혹시 떨어질 때를 대비해서 가족과 친한 친구 몇 명을 제외하고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나는 한 달 뒤에 긁을 수 있는 복권을 쥔 사람처럼 애타게 한 달을 기다렸다. '시간 참 빠르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지만 이때만큼은 나의 시간이 나무늘보처럼 느릿느릿하게 흐르고 있었다. 이렇게 뭔가를 간절히 원하게 된 것도 참 오랜만이었다.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내 마음은 이미 영국에 가 있었다.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는 만큼 현재 생활에서의 슬럼프는 깊어져 갔다. 하지만 영국 워킹홀리데이에 합격하면 이 모든 게 해결될 것이다. 영국에서 개발자로 산다는 건 분명 지금과는 다른 멋진 삶이리라.


그렇게 한 달이 지나 워킹홀리데이 합격자를 발표하는 날이 되었다. 합격자는 외교부 워킹홀리데이 인포센터 웹사이트에 이름과 전화번호 뒷자리로 공지된다. 합격자를 발표하는 날이 평일 오전이어서 나는 그날도 회사에 있었고, 아무도 못 보게 화장실에 들어가 합격자 공지를 확인했다.


“정부후원보증서 발급자: 총 1,000명”


정확히 1,000명의 합격자가 공지된 표가 있었다. 가나다라 순으로 정렬된 합격자 이름 중 떨리는 마음으로 이응을 찾아 스크롤을 내렸다.


“엄지* 1234”


오마이갓! 내 이름과 전화번호를 찾는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믿기지 않아 눈을 비비고 다시 봤지만 여전히 내 이름이 있었다. 몇 번을 떨어지는 사람도 많다는데 이렇게 한 번에 붙다니, 이것은 분명 운명의 데스티니! 회사 화장실에 있었기 때문에 소리 지르며 기뻐할 수 없었으나 속으로는 감격의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종교는 없지만 이때만큼은 하나님, 부처님, 알라신께까지 감사드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워킹홀리데이 합격, 영국으로 향하는 첫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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