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빨리 저물어 간 친구의 아들을 추모하며
스웨덴 라디오 방송국 피디이자 작가이자 번역가로 활동하는 백러시아 계 친구의 새소식. '뭐야... 이 친구 새 드라마 일 시작했나? 이 남자 배우가 주인공이야?' 오랜만에 들어간 내 FB에 친구 D의 이름이 태그 된 사진과 글이 올라왔다.
사진 속 10대 중반의 소년은 머리를 뒤로 묶었고,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눈이 영특해 보인다. 그런데 배우라 하기에는 청년의 표정이 너무 투명하고 꾸밈이 없다. 그냥 아이처럼. 아래에 작은 글씨로 쓰인 기사는 읽어보기도 전에 D가 새 드라마, 혹은 연극일을 시작했다고 생각해 버렸다. 그리고 사진은 새 드라마 포스터라고 추측했다.
그러나 이건 내 착각이었다. 사진 밑에 백러시아어로 쓰인 기사를 보니 제일 먼저 폴란드어 동사 "살해하다"와 발음이 같은 단어가 눈에 들어온다. '에이, 설마... 아니겠지’
하지만 왠지 불안하다.... 사전을 찾아 확인해 보니 그 뜻이 맞다.
같은 사진이 실린 스웨덴 신문사의 기사도 올라와 있다. 친구 D와 성이 같은 10대 소년이 평소 친했던 동급생에 의해 살해되었다고 한다. 이 청년은 평소 친하게 지내던 동급생 전화를 받고 같이 자전거를 타고 가서 당했다. 가해자인 같이 놀러 나간 동급생은 범행 직후 스스로 경찰에 연락해서 범행을 자백했다.
피고인 청년은 범행 방법을 철저히 계획했는데, 어이없게도 범행 대상은 무작위로 결정했다. 범행 내용은 너무 끔찍해서 생략한다.
놀라운 것은 희생자뿐 아니라 피고인 학생도 중상류 층 가정에서 좋은 교육을 받은 모범생이며 평판이 좋고 평소에 폭력성은 조금도 없어 보였다는 것이다. 특별한 범행 동기나 원한도 없다. 피고자는 평소 공포영화를 즐겨 보는데 자신이 본 내용을 한 번 실험해 보려고 처음에는 다른 친구에게 전화를 했단다. 그런데 그 친구가 전화를 안 받자 결국 희생자가 된 이 친구에게 연락했다. 함께 자전거를 타고 놀러 가자며 호숫가에 데려가 범행을 저지른 것이다.
친구 D의 아들은 이렇게 며칠 전에 세상을 떠났다.
D를 처음 만난 것은 6년 전 2월. 부인은 한국인 미술가이고, 남편은 스웨덴 예술대학 교수인 한 부부가 초대한 갤러리 모임에서였다. 눈이 많이 쌓여서 역 근처에 있는 화랑을 찾아 걸어가는데 시간이 걸렸다.
내가 들어오자 그녀는 내 손을 끌고 한 사람에게 데려간다. "이리 와봐요. 이 친구는 한국에서 왔고 러시아어문학을 전공했어요. 그리고 D는 스웨덴 라디오 방송국 피디로 일하는데 우리 프로젝트를 도와줬어요... 민스크가 고향이지? 아 그럼 두 사람 모두 러시아어 하겠네요...".
해외에 사는 사람에게 현지인도 아닌 타국 사람이 자신의 모국어를 한다는 것. 같은 언어를 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은 사람이 나와 같은 말을 쓰면 마음을 쉽게 열게 된다. 그리고 처음 만나는 사이라도 헤어지고 나면 기억이 안 나는 뻔하디 뻔한 사교성 대화, 이를테면 어디서 왔니, 이 나라에 몇 년 살았니 왜 왔니 등의 이야기는 오래 안 하게 된다. 대신 대화는 서론 없이 본론으로 바로 들어가게 되고 좀 더 오래 기억나는 대화를 하게 된다.
미술계에서 일하는 사람이 손님의 대부분이었던 이 모임. 갤러리 한 구석에서 우리가 조용히 나눈 대화는 시각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주최한 장소에서 큰 소리로 떠들 내용은 아니었다. 그 날 시각예술은 영상은 우리에게 즉각적인 인상을 준다. 창작자는 시각적 영상을 통해 보는 이의 인식을 조종하기 쉽다. 하지만 소리나 글을 통해 전하는 텍스트는 청자나 독자에게 좀 더 생각하고 해석할 자유를 준다... 뭐 이런 잡담을 했다. 그 친구나 나나 누가 문 과돌이가 아니랄까 봐 말이다.
D는 작가, 번역가로 일하는 동시에 스웨덴 라디오 방송국에서 드라마 PD로 일한다고 한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그가 러시아어로 쓰인 다니일 하름스의 "실패한 공연"을 스웨덴어로 번역, 출판을 했다. 더 나아가 그는 이 작품을 극화해서 자신이 PD, 연출을 하는 스웨덴 라디오 방송국 "라디오 극장"에 스웨덴 성우들이 방영했다는 것이다.
이 작품은 얼핏 보면 문맥 없이 뜬금없이 흘러가고, 말장난이 가득해서 원작 어인 러시아어로도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뭔지 텍스트의 겉의미만 파악해서는 이해하기도 힘들다. 원어로도 각색해서 무대에 올리거나 극화하는 것은 더 어려울 것 같다.
러시아어와 어족뿐 아니라 말의 결도 참 다른 스웨덴어로 이 부조리한 작품을 번역, 각색, 극화해서 전 국민이 들을 수 있는 스웨덴 국영 라디오에 방영할 수 있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번역서가 궁금해서 사 보니 글 중간중간에 크로키가 있다. 책 겉표지를 보니 번역, 삽화: D라고 쓰여있다. '어라... 직접 삽화까지 그렸네. 이 친구, 참 인물이네'
그가 왜 부조리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됐는지 궁금했다. 그제야 그는 자신의 인생 사연을 이야기한다. 고국에서 문인 생활을 하고 있던 그는 스웨덴에 직장을 얻게 된 부인을 따라 함께 이곳으로 이주했단다. 하지만 부인으로부터 "당신은 결혼 생활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야"라는 원망을 들으며 이혼하게 됐단다. 자신이 계획하지 않은 나라에 와서 살게 되고 인생이 계획이나 의도와 상관없이 전개되니 그는 삶이 참 부조리하다고 느꼈다고 한다.
"그런데 당신의 삶도 참 부조리하네요. 다시 어문학 관련 일을 하고 싶지 않아요?" 그가 내게 말한다.
이 친구는 재능은 많은데 왠지 살짝 비관적인 에너지가 느껴진다. 그런데 내게 앞으로 자주 만나자고 한다.
그 후 알고 보니 집도 서로 가까운데 나도 그 친구도 사는 게 바빠서 얼굴을 자주 보지는 못했다. 아니다. 어쩌면 이 친구에게서 느껴지는 살짝 어두운 느낌... 다른 이의 감정에 잘 영향받는 내게 어떻게 영향을 미칠까, 내가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두려워 내가 본능적으로 거리를 유지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우리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한 번씩 만나서 각자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만날 당시에 하고 살던 생각들, 짧지만 깊은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이 친구가 가끔 얼굴이 환해질 때가 있었는데 자기 아들 이야기를 할 때였다.
몇 년 전 한 여름날 늦은 오후에 그를 만났다. 집 앞 호수가를 따라 산책하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저녁 식사할 시간이 되었다. 그래서 인사하고 헤어지려고 하는데 "저녁밥 해줄게 우리 집에 같이 집에 갈래요? 아들도 곧 집에 올 텐데 소개해줄게요"라고 한다. 당시 난 여름휴가여서 좀 늦게까지 놀아도 다음 날 출근에 대한 부담도 없었다. 그리고 그의 집은 걸어서 15분밖에 안 걸리는 거리이다. 그래서 부담 없이 집에 가서 밥도 먹고 아들 얼굴도 보고 갈 수도 있었는데... 나는 "고마워요. 다음에요"라고 말하고 말았다. 그리고 헤어졌다.
한 번은 12월 어느 밤 전철 안에서 그 친구를 우연히 만났다.
그 날 10시가 넘어서 회사를 나와 집에 가려고 전철을 탔다. 누가 도대체 스웨덴에 야근이 없다고 했는가? 스웨덴 대기업에서 일하는 스웨덴 사람들은 야근을 종종 하고, 과로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상사 눈치 야근, 혹은 강압적 야근만 없을 뿐이지 업무량이 많아 가끔은 야근을 피할 수가 없다. 여러 통계를 종합해 보면 기업들은 목표 수익성과 주가를 달성하기 위해 효율성 제고 속도보다 더 빨리 인력을 감축해서 인당 업무 과부하가 심해지고 있다. 그날 정말 피곤해서 빈자리를 보자마자 가서 털썩 주저앉았다. 얼마 후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어보니 내 앞자리에 D가 앉아있다. 웬 우연이지? 그는 시청에서 열린 노벨상 수상식 만찬 참석 후 집에 가는 길이라고 한다. 우리는 백러시아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셰비치가 왜 그 해에 노벨문학상을 타게 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D는 2차 세계대전을 살았던 여자들의 전쟁 경험에 대한 기억을 여러 여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인터뷰 형식으로 묶은 형식과 다성악기법이 참신해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당시 스웨덴은 우크라이나 강제 침공하고 크림반도를 차지하려는 러시아, 전체주의에 대해 적대적인 입장이었다. 이런 정치 상황에서 나는 남자가 아닌 다양한 여인 한 명 한 명의 전쟁에 대한 기억, 여성의 목소리를 통해 전해지는 반전의 메시지 역시 수상작가 결정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조국의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그 좋은 날, 수상작에 대해 주요 언론사에 대서특필된 평론도 쓰고, 또 시상식 만찬에도 초대받아 그 날 모처럼 기분이 좋아 보였던 그 친구에게 그런 말은 굳이 하고 싶지 않았다. 세월이 가면서 이로움도 없고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는 사적인 논쟁보다는 가까이 있는 사람의 기분과 감정을 살피는 것이 내게 더 중요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