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리 (2)

너무 빨리 아들과 강제로 작별하게 된 친구를 생각하며

by 황지현 박사

"난 지금 총알을 씹고 있는 것 같아. 이 모든 게 다 끝나고, 아들을 묻고 나면 그때는 정말 울음이 터질 것 같아..."


생각해보니 지난 6년간 D는 내게 해 준 것이 참 많은 것 같다.


처음 만난 후 친구는 나와 내 동생에게 자신이 근무하는 스웨덴 국영 방송국 내부를 구경시켜줬다. 영상이 없이 소리로 모든 것을 전해야 하는 라디오 극장의 음향 효과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게 되었다. 한 음향실에 웬 낡은 욕조와 옷이 있어서 이건 뭐냐고 물었더니 극 중에 "욕조에서 나와 옷을 입었다" 이런 말이 있으면 누군가가 욕조에 물을 받아놓고 손으로 젓다가 옷을 부스럭거려서 음향 효과를 낸다고 한다.


그는 문학과 언어를 좋아하는 나를 여러 작가와의 만남, 작품 낭독회 등 문학 행사에 자주 초대하곤 했다. 이런 모임은 참 즐겁다. 이 친구 덕분에 스웨덴 작가협회 본사에도 가보게 되었다. 이런 행사에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왠지 힘이 나고 피로가 가신다. 그리고 집에 오는 길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기분 좋은 설렘에 마음이 들뜬다.


하지만 나는 벌써 7년째 알고 지내는 이 친구에게 별로 해 준 게 없는 것 같다. 생각을 나누고 이야기를 들어준 것 외에는... 부끄럽고 미안하기만 하다.


시간이 지나 또다시 연말이 되었다. 방송국 레스토랑에서 그를 만났다. 오랜만에 만난 그는 너무 핼쑥해졌다. 무슨 일이 있었구나... 왠지 내가 그의 겉모습만 보고 그에게 안 좋은 일이 있었다고 추측한다는 인상을 주기는 싫었다. 살이 많이 빠졌구나라고 말하기도 미안했다.


"D, 운동을 시작했나 봐요? 그동안 도대체 어떻게 지낸 거야... 어서 말해봐요".
"아파서 휴직을 오래 했어. 그때 거의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어서 살이 빠지기 시작했지. 그런데 이 상황을 내게 이롭게 만들려고 운동을 했어. 한 20킬로는 빠졌지".


그는 매주 직장 근처 도장에서 친구들과 합기도를 한다고 한다. 나 보고도 우리 직장에서도 가까우니까 퇴근하고 놀러 오라고 한다. 난 좀 힘들 것 같다며 그냥 웃었다.

그 때 나는 하루가 저물면 진이 빠져서 운동할 여력이 없었다.


오늘까지 며칠 동안 스웨덴 신문사는 앞을 다퉈 이 끔찍한 사건을 다뤘고 D와의 인터뷰 내용을 실었다. 이런 상황에서 D는 어떻게 이렇게 침착하게 집으로 찾아오는 기자들을 맞이하고, 인터뷰를 하고, 그 아들의 마지막 삶의 순간에 찍었던 사진과 에피소드를 전할 수 있을까? 이 아이를 본 적도 없는 내가 생각해도 잠이 안 오게 잔혹한 일을 당하고 세상을 떠났는데... 어떻게 이 상황에서 언론사와 맨 정신으로 인터뷰를 하지? 난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기사들을 읽으면서 아버지인 그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수많은 기사는 사건 자체보다는 먼저 떠나 간 아들의 사진과 함께 그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그다음 날, 또 다음 날에도 기사는 그 아들의 생전 모습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그리고 있다. 그 아이가 얼마나 미래가 촉망되고, 급우들에게도 인기가 많고 건전한 야망과 재능이 많은 아이 었는지... 이팔청춘 16살 소년은 공감 능력과 동정심이 많아 늘 주변 사람들을 도왔다. 또 4개 국어를 구사했고, 피아노에 뛰어났고, 집중력이 강하고 뭐든지 빨리 배웠다. 그는 장래가 촉망되는 최우등생이었단다. 작년에 고등학교에 입학한 소년은 졸업 후에는 의대에 진학해서 심리학을 공부할 계획이었다.

아버지가 힘들 때 "아빠, 다 잘 될 거야"하며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네는 철든 아들이었다. 게다가 소년이 다니던 고등학교 동급생들의 부모들과도 말이 잘 통해서 학부모들은 그 아이가 남의 자식이지만 아들 같았다고 한결같이 증언한다. 며칠 전 거울을 보며 아빠보다 키가 한 뼘이나 더 커버린 자신의 모습을 보며 신기해했다는 이야기도. 그리고 농구를 좋아하고 덩치는 큰데 식성은 유치원 아이 식성이었다고.


그는 가해자 학생에 대한 질문에 "정말 내 맘속에서 해결해야 할 어려운 문제이다. 하지만 그 학생에게 악을 바라고 싶지는 않다. 그 학생 부모도 지금 많이 괴로울 텐데 더 힘들게 하고 싶지는 않다."라고 짧게 언급했다.


세상을 미처 경험하지도 못하고, 무엇인가를 해보기도 전에 먼저 떠나 간 16살 아들. 외국에서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글을 쓰는 것을 업으로 하는 아버지가 삶을 제대로 살아보기도 못하고 세상을 먼저 떠난 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마지막 선물. 아들의 이야기, 그 아들의 모습, 그 아이가 가족, 친구들,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이었고 얼마나 좋은 아이 었는지 지면에 형상화해서 아들의 생명을 다시 살리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죽을힘을 다해 인터뷰를 했을 것이다. 너무 짧았던 아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읽고, 사진 속의 아들의 모습을 볼 수 있게... 그렇게 해서라도 글과 사진을 본 이들의 기억 속에서라도 아들을 조금이나마 더 살게 하려고...


그는 지금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애통함을 꾹꾹 삼키며 인터뷰에 응해왔던 것이다. 죽을힘을 다해 아들을 잃은 슬픔과 싸우며 울음을 참고, 가까스로 버티고 있는 것이다. 마치 전쟁터에서 군인이 총알을 씹는 것처럼...


그 여름날.. “우리 집에서 내가 저녁밥 해 줄게, 내 아들도 보고... “ 그날 저녁 고맙다 하며 따라가서 즐겁게 밥 한 끼 함께 먹고 아들 칭찬도 해주고 올 걸 그랬다.


나는 D에게 전화를 했다. 첫 신호음이 한 번 다 울리기도 전에 그는 전화를 받았다. 완전히 탈진한 목소리로.


"나야... JH. 신문에 나온 기사들 다 읽었어... 정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정말... 어떻게 이렇게... 나 계속해서 너와 네 가족 생각하고 있고 맘 속으로 계속 함께 하고 있었어. 식사는 어떻게 하니? 나 네 집에서 가까운데 살잖아... 친구야,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정말 꼭 알려줘"


"고마워... 정말 고맙다. 아침에는 러시아 교회에서 동방정교식으로 장을 치를 거야. 정오에 집 앞 교회에서 장례식을 하니까... 우리 교회에서 곧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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