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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 Dec 29. 2019

사이에 있는 날들

스웨덴 연말연시

오후 3시가 되기 전에 해가 지고 어두워지는 11월 말 12월.
거리는 차분하고 우울하다. 많은 사람들은 이 계절을 나는 것이 쉽지 않다. 사람도 동물처럼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수면 호르몬이 조절된다고 한다. 만성 불면증에 시달리지 않는다면 말이다.

해가 뜨기도 전에 아침이면 어김없이 일어나 정해진 때에 일터에 가서 일하다가 해가 진지 몇 시간이나 지나서 집에 돌아오는 생활은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노동력을 동원하기 위해 새로 도입한 생활 방식이라고 한다.


하지만 사람의 몸은 세대가 지나도 태초에 우리의 조상들이 만들어진 모습 그대로이다. 수백 년 수천 년이 지난 이후 우리도 자연의 움직임에 변함없이 정직하게 반응한다. 유전자를 변형시키는 외적 요인이나 과학을 이용한 인간의 장난 등의 변수가 없다면 수만 년이 지나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그래서 해가 지면 우리의 몸은 잘 시간이 된 줄로 착각하고 마음도 잘 준비를 하는 것일까?
커피를 마시며 억지로 덜 깬 잠을 뒤로하고 일터에 나가는 사람들. 봄, 여름의 하루보다 훨씬 길게만 느껴지는 하루의 노동이 끝나면 많은 사람들은 초점을 잃은 눈을 하고 표정 없는 얼굴로 일터에서 걸어 나온다. 그리고 다소 둔해진 동작으로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다.


저녁에도 요란하게 빛나며 거리를 밝히는 네온 간판이나 거대한 옥외 광고 등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것들이 붙을 만한 높은 건물도 거의 없다. 어두운 거리를 비치는 것은 가로등과 얼마 후면 꺼질 사무실과 상점의 전등 빛이  전부이다.

이 계절에 저녁에 밖에 있으면 외롭다. 흥미진진하지도 않다. 이른 저녁에 집에들 가면 여느 날과 다름이 없이 전개될 가족 중심의 일상이 전개된다. 편하고 안정적이다. 그들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저녁을 먹고, 침침한 거실에 놓인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다가 10시가 조금 넘으면 내일을 생각하며 잠을 청할 것이다.


이런 반복된 삶에서 사람들이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유일한 날이 있다. 바로 성탄 연휴이다. 올해는 성탄절은 하얗지 않다.

성탄절이 지나고 또 이틀이 지난 오늘. 성탄과 연말연시 사이의 날들. “사이에 있는 날들”이라고 부르는 날이 시작되었다. 내가 잠에서 깨어난 것은 오전 10시 30분. 모처럼 날씨가 맑을까.. 완전히 닫히지 않은 두 개의 커튼 사이로 방에 햇빛이 비쳐 들어온다.

창문으로 다가가 커튼을 제치고  창밖을 보았다. 당장 장갑을 끼고 밖에 나가 눈사람이라도 만들고 싶게 하는 그런 풍경은 아니었다. 푹신한 솜사탕 같은 눈이 쌓이지는 않았다. 다만 저녁에 살짝 내리다가 그치고 만 눈은 땅을 완전히 가리지 못하고, 하얀 샤베트를 누가 여기저기 문지른 것처럼 땅 여기저기에 얇게 눈이 달라붙어 있다.

이 “사이에 있는 날들”은 참 어정쩡하다. 이 날들은 완전한 휴일 분위기도 아니고 온 도시가 아예 맘 편하게 놀까 말까 고민하는 분위기이다. 상점과 음식점들의 영업시간도 어정쩡하다. 오랜만에 만난 부모, 형제자매, 배우자의 가족과 함께 여느 명절때와 마찬가지로 고기 동그랑땡과 햄, 생선 초절임 등을 연일 먹으면서 지내다가 지친 사람들은 사이의 날이 되면 마치 중요한 일이라도 있는 듯한 표정으로 우르르 거리에 몰려나온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들 손에 쇼핑백 몇 개씩 들고 다닌다. 성탄절이 끝나자마자 시작되는 "사이에 있는 날들"의 모습. 이것은 오래전부터 전 국민이 참여하는 소소한 연말연시 의식이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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