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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 Dec 31. 2019

5. 스웨덴 종합예술인의마지막 거처

스웨덴의 미켈란제로 아우구스트 스트린베리

모든 지하철 노선이 모이는 중앙역에서 내려 드로트닝스가탄을 따라 20분 즘 걸어간다. 그러면 스트린드베리가 마지막으로 머문 아파트가 나온다. 이 작은 아파트에 그가 집필하던 구석의 공간, 책상, 펜, 그가 식사하던 거실 식탁, 사람들을 불러 피아노 및 악기 연주를 듣던 모습을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그는 웁살라대학교에서 공부하다 중퇴하고 본격적으로 창작 활동을 하기 전에 스톡홀름에 있는 왕립 도서관에서도 일을 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그의 문학 세계뿐 아니라 그의 삶의 주요 사건 및 주요 작품 출판 시기에 스웨덴과 세계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벽면을 따라 걸어가며 볼 수 있게 요약되어 있다. 그가 당시 역사의 흐름 속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그의 작품이 당시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가 집필을 하고, 식사를 하던 방, 식탁, 의자, 피아노 등이 그대로 보관되어 있다. 그의 집필실에는 그가 글을 쓰며 내던 기침소리를 재현해서 들려주는 기지를 발휘했다. 이 집에는 부엌이 없다. 알고 보니 이 집을 소개해준 여인의 어머니가 건물 아래층에서 음식점을 했는데 이 곳에서 한 음식을 해갖다 주면 집에서 식사를 했다. 그가 살던 당시 남자는 스스로 요리를 안 했단다.


그는 문학뿐만 아니라 연금술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리고 화가로서도 인정을 받았던 것 같다. 얼마 전에 들린 작은 갤러리에는 그의 유화 풍경화 그림이 고가의 경매로 나와있었다.


아우구스트는 지금까지도 계속 운영되고 있는 대중 교육 단체인 ABF 기관 설립에 기여했다.

생존하는 사람에 한해 노벨상을 수여하는 (사실은 당시 다소 보수적이었던) 스웨덴 아카데미는 말년에 병세가 심해진 스트린드베리가 언제 별세할지 모른다고 핑계를 대며 노벨문학상 후보로 추천조차 받지 않았다고 한다.


그를 존경하는 사람들은 스웨덴 아카데미의 이런 보수적인 모습에 반발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형편 되는 데로 자발적으로 기부해서 모인 거금을 상금으로 "민중 문학상"이라는 명목으로 전해줬다. 그의 작품과 활동이 스웨덴 사회와 민중에게 기여한 공로를 인정한다는 표시였다. 병세가 악화된 그가 발코니 문을 열고 거리를 내려다보니 그의 집 앞은 그를 시상을 축하하고 고마움을 표시하려는 사람들로 가득했다고 한다.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는 재능과 열정, 성실함을 다 갖춘 드문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지나친 자의식과 열등감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는 늘 여자들을 증오한다고 말했으나 실제로는 이혼 후에도 결혼을 했단다. 박물관을 안내해 준 스트린드베리 전문가는 또 한 가지 예로 - 늘 덥수룩하게 위쪽을 부풀린 그의 헤어스타일이 의아했었는데 - 키가 작아서 머리카락을 덥수룩하게 세워서 조금이나마 키가 커 보이려고 했다고 덧붙인다. 진짜라며 정색을 하는 그녀의 헤어스타일이 웬지 스트린드베리와 비슷한 것 같애서 정겹다. 진지한 그녀를 보고 있자니 미소를 짓게 되었다. https://www.strindbergsmuseet.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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