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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 Feb 04. 2020

단데뤼드 병원 응급실에서 보낸 한 해의 마지막 날

2019년 마지막 날 오후... 벌써 해가 저물어 가는 스톡홀름의 거리에는 송년 파티를 하기 위해 반짝이는 금은색 원피스와 근사한 양복, 혹은 튀는 옷차림을 한 사람의 무리가 우르르 쏟아졌다. 청년들은 폭죽을 사들고 뭔가 모험을 앞둔 아이 같은 표정을 하고 어딘가를 향해 급히 걸어간다. 여러 명이 나눠 먹으려고 집에서 만든 케이크와 음식으로 보이는 무엇인가를 비닐봉지에 싸서 두 손에 들고 두 어 명의 아이를 데리고 걸어가는 부부도 보인다.  


하지만 한 해의 마지막 날 내게는 흔하디 흔한 송년 파티도, 요란한 불꽃놀이도 없었다.

대신 응급실, 그리고 병원에서 집에 가는 길에서 저녁이 될 때까지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12월 31일은 공휴일. 아버지께서 감기 증상이 호전되지 않아서 단데뤼드 종합병원 응급실을 찾게 되었다. 이 곳 응급실은 평균 6시간은 대기해야 진료를 받을 수 있다. 이 날따라 크지 않은 대기실은 환자들로 가득했다. 큰 병이 아닐까라는 불안감을 간신히 숨기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서 나 역시 기분이 유쾌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아직 말을 못 하는 나이의 아이들은 자신의 고통을 호소하고 싶어서인지 큰 소리로 울어댄다. 한 할머니께서는 큰소리로 대기실에서 통화를 한다. 이런 공간에서 몇 시간을 앉아있다 보니 숨이 막히고 진이 빠지는 것 같았다.   

  병원 응급환자 대기실에서 몇 시간 동안 앉아서 주변을 살펴보았다. 접수를 받고 어느 의사에게 보내야 할지 사전 진단을 하는 전문 간호사는 단 두 명이었다. 그녀들은 휴일인 오늘이 마치 평일인 것처럼 허리 한 번 제대로 펴지 못하고 일한다. 각종 통증을 호소하며 자기 이야기를 하는 환자들을 연이어 대하면서 그녀들은 얼굴에 짜증한 번 안 냈다. 30대 초반이나 되었을까? 사이렌 소리 같은 소리를 내며  우는 두 살 즘 되어 보이는 아이에게 미소 지으며 다가가서 팔을 겉어 붙이고 진찰하는 젊은 의사가 보인다. 총총걸음으로 다니는 의료진/행정직원들, 병원 편의점에서 환자 가족들이 먹을 음식을 파는 사람들......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우고 다시 뢴트겐 실 문을 열고 돌아오니 뢴트겐 담당자는 춤을 추다가 갑자기 들이닥친 나를 보고 주춤한다. 알고 보니 내가 자리를 비웠을 때 뢴트겐 담당자는 한국에서 온 아버지에게 강남스타일을 아냐고 물어봤단다. 그래서 아버지가 강남에서 오래 살았다고 하셨단다. 그 말을 듣고 더 신이 나서 혼자서 어설프게 강남스타일 춤을 추기 시작했단다. 진찰과 종합 설명을 담당한 소녀기가 아직 남아있는 앳된 의사는 10월에 음악 연주하러 한국에 다녀왔다고 하며 참 즐겁게 일한다. 


 그리고 아픈 기색도 안 하시고 딸이 피곤할까 봐 걱정하는 일흔여섯 살 아버지. 나는 사십 대 중반인 지금도 아버지가 계신데 아버지는 오랫동안 아버지가 안 계시다. 아버지께서 어릴 적 돌아가신 친할아버지를 나는 만나 본 적이 없다. 다만 어린 시절에 아버지의 서재에 꽂힌 낡은 앨범에 꽂혀 있던 작은 흑백 사진에 20대의 친할머니와 그 옆에 서 있는 작은 체구의 남자를 본 기억이 난다. 친할아버지는 작은 체구에 학식이 깊은 사업가셨다. 집에는 늘 식사하러 오시는 사람도 많았고, 늘 직원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베푸시는 사람이었다. 기계 작동원리에 뛰어난 분이어서 멀리서 누군가가 타고 오는 자전거 소리만 듣고도 자전거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척척 알아맞히시곤 했단다. 아버지가 어렸을 때 살았던 동네는 친할아버지가 사업을 하시며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많이 베푼 덕택에 생계를 걱정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고 한다. 집에서 일하시던 분들이 장가를 가면 살림을 잘 시작할 수 있도록 넉넉히 챙겨주셨다고 한다. 게다가 생각이 워낙 트인 분이셔서 친할머니께서 토라지시면 직접 식사도 만들어 주셨고, 여자도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늘 말하고 고모도 원하는 만큼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셨단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느덧 6시간이 지났다. 오랫동안 대기한 보람이 있어서 아버지의 진료 차례가 되어서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 아빠와 내가 의자에서 일어나 의사를 따라 진료실로 들어가려는데 아까 큰 소리로 통화하시던 할머니께서 갑자기 우리를 따라온다. 아버지가 장갑을 떨어뜨린 것을 용케 보고 챙겨주려고 했던 것이다. 할머니는 우리 동양인 부녀가 여기에 왜 왔을까 관심이 있었으나 티를 안 내고 계속 우리를 지켜보고 계신 것이었다. 그런데 문득 할머니께서는 귀가 어두워서 크게 통화하셨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낯이 뜨거워졌다. 
이렇게 쉴 틈 없이 계속 응급환자를 보면 진이 빠질 텐데 아직 소녀기가 가시기 않은 얼굴의 젊은 의사는 작년에 음악 연주를 위해서 한국에 다녀왔는데 너무 좋았다고 하며 명랑한 표정으로 우리를 맞이했다. 당장 급한 처방을 해 주고, 정확한 진단을 위해 뢴트겐 촬영을 권한다. 그리고 며칠간 경과를 지켜본 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상냥한 표정으로 설명해줬다. 젊은 의사가 꼼꼼한 진료 덕택에 독감이라고 단정 짓고 그냥 지나쳤으면  발견하지 못해서 정말 큰 문제가 될 수도 있었던 문제도 나중에 밝혀졌다.


 병원에서 나와서 지하철 입구에 가니 개표대 한 구석에 어두운 유리창 안 쪽에서 지하철 표를 판매하는 분도 내 눈에 들어온다. 나의 평일 바쁜 출퇴근길에는 좀처럼 보이지 않았던 모습이다. 
 배가 고파서 둘러보니 음식점 문이 아직 열려있다. 주방에서 요리하시는 분들 덕택에 아버지와 나는 저녁에 밥을 하는 수고를 덜고 해물 쌀국수와, 초밥, 불고기 등 비교적 우리나라 음식에 가까운 맛있고 따뜻한 저녁식사를 할 수 있었다. 


 파티하며 초세기를 하다가 정오가 되면 짠하고 잔을 부딪히며 보내는 한 해의 마지막 날. 아니면 정오가 되기 전에 불꽃놀이를 하려고 밖에 나가기도 했던 한 해의 마지막 날들... 올해 마지막 날은 여느 해와 다르다.  
 다른 사람들의 편의와 안전을 위해서 가족과 또래들과의 연말 파티를 포기하고 봉사하는 사람들이 늘 이렇게 많았다는 것, 나는 평생 못 만났어도 많은 이들의 기억에 좋은 모습으로 살아계신 친할아버지 이야기. 그리고 아버지와 오래 이야기하며 보낼 수 있어서 참 감사하다. 


 올해 마지막 하루를 진부한 송년 파티 장소가 아니라 응급실, 병원을 오가는 길에서 보내며 늘 내 곁에 있었지만 내 삶이 너무 바쁘다는 핑계로 그냥 지나쳐왔지만 진짜 값진 것들을 발견했다. 그 어떤 불꽃놀이 보다도 아름다운 사람들을 발견하고 그들이 말없이 베푸는 봉사의 가치를 느끼며 한 해의 마지막 날을 보낼 수 있게 돼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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