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피아 Feb 04. 2020

도대체 자존감에 무슨 근거가 필요하단 말인가?

근자감 함양을 위해

"너는 그 어떤 조건도 없이 너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구원을 받은 귀한 사람이야"


많은 스웨덴 청소년들은 견진 성사를 받는다. 내가 다니는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자신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청년이었을 것 같은 젊은 청년부 목사는 자신이 인도한 견진 성사 캠프에 참여한 청소년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불러 사람들 앞에 세우고 함께 보낸 며칠 동안 관찰했던 아이의 특성과 장점을 칭찬하면서 얼굴에 감동과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그는 어떤 아이가 공부를 잘한다, 똑똑하다, 뭘 잘한다 등의 말은 단 한 마디도 안 한다. 다만 누구는 유쾌해서 친구들을 기분 좋게 한다, 누구는 힘든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것을 보려고 한다, 또 어떤 아이는 상황이나 친구들에게 관심이 많아 관찰력이 뛰어나다 아이 한 명 한 명에게 고유한 특성을 기억해서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한다.
목사님은 견진 성사를 받는 청소년에게 공부를 열심히 해서 사회에 기여해라,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하지도 않고,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라는 훈계도 안 한다. 가족들과 백 명은 넉넉히 넘은 많은 사람들 앞에 아이를 세우고 그 아이는 아무 조건 없이 구원받고, 축복받은 소중한 존재라는 걸 기억하고 살라고 선포한다. 이 짧은 순간 이 말을 들은 아이들은 눈물을 글썽이며 환희에 찬 표정을 짓는다.


내가 노력을 해서 무엇을 성취하고 이루느냐에 따라 자신의 가치가 매겨지는 것도 아니고 남들이 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무슨 직업을 갖고 있고, 앞으로 어떤 사회적 지위에 있고, 얼마나 돈을 많이 벌고, 얼마나 많은 이에게 영향을 미치는가가 나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냥 구원받을 정도로 그 존재만으로도 소중하다. 그래서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선포한다.

그 이후 세월이 흐르고 아이가 어른이 되면 교회를 안 나갈 수도 있고, 신앙에 회의를 갖고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삶을 살 수도 있다. 그래도 이런 이야기를 분명히 듣고 어른이 된 사람은 살면서 평소에는 물론이요, 힘든 일을 겪어서 삶이 무너질 것 같은 순간이 와도 무의식 깊숙한 곳에 이미 뿌리내린 "너는 그 어떤 조건이나 상황에서도 소중한 존재야"라고 말하는 목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그러면 비틀거리다가도 천천히 일어서서 앞으로 걸어 나갈 힘이 날 것이다.


또 하나. "네가 갖고 누리는 것은 네 행위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의 은혜이자 선물이다". 즉 성취와 누리는 것은 한 개인의 재능, 노력과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노력을 안 해도 본인의 신앙심이나 신의 기적, 행운 등에 의해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는 뜻이 아니다. 사람이 무엇인가를 이루고 누릴 때에 그건 그 사람이 잘나서도 아니고, 그 사람의 의지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다. 도와줄 사람들, 시기, 여러 상황 등 통제 불가능한 어마어마한 변수들이 너무 많이 필요하다. 이런 변수들이 무질서하게 다른 시. 공간에 흩어져 있다가 한 사람의 소망, 의지, 노력, 재능과 화음을 이루며 질서 있게 한 방향으로 흘러가서 무엇인가가 이루어진다는 것 자체가 신의 은혜이자 축복인 것이다.

이를 깨달으면 겸허함이 평소 마음 가짐이 될 것 같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고 이웃을 돕는 것이 자기 수양을 위한 선행이나 남에게 베푸는 시혜도 아닌, 분명한 이유 있는 책임감이 된다. 경제적으로 발전된 지역에서 교육의 중요성을 잘 아는 부모 밑에서 태어난 건강한 아이와 언제 끔찍한 전쟁이 계속되는 고국으로 파송될지 모른다는 극도의 불안감속에서 매일을 견뎌야 하는 난민 아이의 삶은 시작부터 너무 다르다. 어른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펼쳐질 두 아이의 삶은 시나리오가 다르다. 같은 하늘 아래에서 너무 다른 조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정말 노력과 상관없는 요소들 때문에 인간의 숭고함을 포기하고 살 수밖에 없는 현실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고 살고 싶다.


우리나라는 아이들에게 어렸을 때부터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한다.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동기에는 입신양명이라는 유교 사상과 경제적 잣대로 사람을 구분하려는 자본 지향적 가치가 교묘히 섞여 숨어있다. 어떤 사람은 어른이 되어 다른 문화에 오랜 시간 노출되어도 이 주입된 가치와 실제로 체험해서 알게 된 거창하지 않은 행복에서 깨달은 진짜 가치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며 바둥거린다. 마치 발은 뒤에 있는 절벽에 걸치고 양팔은 앞에 있는 절벽에 대고 버티며 두 개의 절벽 사이에 매달려 어느 편을 선택해야 할지 몰라서 끙끙대며 버티는 것처럼... 두 손을 놓고 절벽 아래로 떨어져도 밑에는 푹신하고 든든한 보호망이 있어서 크게 다치지 않는다는 것은 모르는 채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단데뤼드 병원 응급실에서 보낸 한 해의 마지막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