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가 또까르축
"올가 또까르축의 그 책 있어요?"
"아, Bieguni를 찾으세요?"
굳이 이 상황을 알기 쉽게 비유하자면 외모가 한국인과 전혀 다른 어떤 외국인이 교보문고에 들어와서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 있어요?"라고 우리말로 묻는 것과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폴란드인 서점 직원은 웬 동양인 여자가 폴란드어 원서를 찾을까 하고 신기해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의 조국의 작가가 노벨상을 탔다는 문학성을 인정받은 작품의 언어를 모국어로 하는 한 국민으로서의 자부심이 살짝 묻어나는 흐뭇한 표정을 짓고는 당당하게 앞서 걸으며 나를 책이 있는 구간으로 안내한다.
나란히 자른 앞머리가 특징인 올가 또까르축의 Bieguni를 끄라꾸프에서 구입했다. 러시아어로는 어근과 어미, 발음까지 비슷한 „Бегуни“라는 단어로 번역되었다. 이 책은 스웨덴어로는 Löpparna (뛰는 자들/달리기 선수들)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독자들 수준을 낮게 봐서는 아니겠지만 작품을 한정적으로 해석할 위험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친절한 제목을 붙여 책을 읽기 전부터 흥미를 가시게 하는 “방랑자들”이라는 우리말 번역, 다소 원제와 멀어진 듯한 “Flights”라는 영어 번역보다는 스웨덴어 번역이 원문과 작가 의도를 중립적으로 전달하고자 한 것 같다.
올가는 가장 “폴란드적”인 작가는 아니지만 - 물론 폴란드적이라는 것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 폴란드의 현대문학에서 중요한 작가이다.
그녀는 오랫동안 폴란드 문화 저변에 깔려있는 반유대적 성향을 비판해왔다. 그리고 세계대전 시기의 폴란드 역사를 다시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이유로 그녀는 폴란드 독자들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갈리는 작가이다. 그녀는 심지어는 어떤 사람으부터 sns를 통해 살해 협박까지 받았다. 정부 역시 그녀를 좋게만 여기지는 않았다. 민족주의적 성향의 몇 정당은 그녀를 반 폴란드적 작가라고 하며 은근히 그녀를 적대시했다. 한 때 정부는 작품 해외 보급 지원금을 지급하지 말아야 할 작가 목록에 그녀를 올렸다. 그래도 그녀의 작품은 30여 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스웨덴 아카데미는 - 물론 정치적 언급은 않고 - 공식적으로는 “경계 뛰어넘기를 삶의 방식의 하나로 형상화한 이야기 예술”을 창작했다는 이유로 그녀를 2018년 노벨문학상을 시상했다.
SNS에서 그녀의 작품은 "읽을 필요도 없다"라며 그녀를 대놓고 무시하던 폴란드 뭐 정당대표는 올해의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된 후 자기 SNS에 또까르축에대해 호감적으로 언급했다. 물론 이를 보며 비웃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한 정당 대표쯤 되는 사람이 자신이 이런 메시지를 트위터에 올리면 비호감적 반응을 보일 사람들이 있을 거라는 것을 몰랐을 리가 없다. 그는 금방 지나갈 불특정 다수의 비웃음 따위를 신경 쓰기보다는 자신의 조국의 작가인 그녀가 문학작품을 통해 세계에서의 폴란드의 위상에 기여한 바를 한 나라의 당수로서 시원하게 축하하는 것이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