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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 Feb 11. 2021

세계인들과 일하는 일상 이야기(2)

가슴에 태극기를 새긴 기세등등 청년, 드디어 스웨덴 회사에서 만났다

스웨덴은 이제야 마스크를 쓰는 사람들이 가끔 보인다. 출퇴근 시 늘 지나가야 하는 명품 쇼핑 거리에는 마지막 세일에 득템을 노리고 모여든 사람이 많이 보인다. 오늘 자택 근무를 하다가 주문한 새 휴대전화가 왔다는 메일을 받았다. 집에서 마이크로소프트 팀으로 늘 신나는 표정인 내가 가입한 노동조합 대표와 상담을 끝내고 늦은 오후에 전화를 받으러 사무실에 잠시 들렸다. 

복도를 걷고 있는데 외투와 모자를 미처 벗지 못한 신입 사원 한 명이 뭔가를 인쇄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서로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사무실에 들어가니 또 다른 남자 동료 한 명이 와있었다. 이는 평상시보다 더 들뜬 모습으로 나를 반갑게 맞이하며 "멀리서부터 네 목소리가 들렸어"라고 말한다. 따라 들어온 신입 사원은 "너도 사무실에서 좀 일하다 갈거니 아니면 바로 다시 집에 가니"라고 묻는다. 그래서 "전화만 받고 바로 집에 가봐야 해. 마무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그럼 곧 다시 만나길 바랄게"라고 말한다. 코로나 때문에 사람들이 서로 볼 수 없는 날이 오래되다 보니 사람들과의 만남이 이전보다 더 귀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그리고... 나 나이 들어가는 것 맞는 것 같다. 예전에는 나보다 나이가 많이 어린 직원들을 만나도 전혀 느끼지 못했던 명랑한 기운이 요즘 들어 느껴지기 시작했다. 옛날에 교수님께서 "내 친구들은 나보고 학생들과 매일 수업하니 젊게 살겠다고 해요"라고 하던 말의 의미를 이제야 이해할 것 같다. 살짝 슬프다. 


오전에 살짝 울적했었는데 사람들을 만나니 기분이 좋아진다. 명랑한 기운을 느끼며 사무실에서 나와서 전화기를 받으러 전산 지원부서에 가니 한 청년이 맞이한다. 내 이름을 확인하려 해서 말해도 잘 못 알아들을까 봐서 그냥 아이디카드를 보여줬다. 그랬더니 J로 시작하는 내 이름 첫 자와 보통의 유럽인들이 어떻게 발음해야 할지 난감해하는 hyun 역시 '현'이라고 정확히 읽는다."이렇게 읽는 것 맞아?"라고 내게 되묻는 직원에게 나는 "맞아. 이거는 한국 이름이야. 너는 발음이 좋네. 대부분 스웨덴 사람들은 J 발음 잘 못하는데..."라고 말했다. 그러자 금발 청년은 "그래? 나는 반은 핀란드 사람이고 반은 스웨덴 사람이야"라고 하며 전화 액세서리를 건네준다. 


 너무 신기하고 뜻밖이어서 한참 보고 있는데 비슷한 또래의 키가 큰 이국적 외모의 청년이 그 자리로 가서 전화에 여러 프로그램을 설치하는 동안 보안상 사용자 본인이 직접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하기 때문에 계속 그 사무실에 있었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니 한 책상에 놓인 필통에 꽂힌 작은 태극기가 눈에 들어온다. 한 청년이 그 자리에 와서 앉으며 "안녕하세요"라고 우리말로 내게 큰 소리로 말한다. 청년은 전설적인 러시아 가수 빅토르 최를 닮았다. 나는 청년이 내가 한국인이라는 걸 몰랐다면, 그리고 나 역시 내 조국에 대한 자부심이 없다면 도저히 할 수 없었을 농담을 했다. "너 그 깃발 정말 예쁘네... 펩시콜라 로고 비슷하게 생겼어" 동시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같은 회사인데도 고객을 만나야 하는 기업금융 직원, 그리고 경영. 전략 기획 직원은 우리나라 직장인처럼 양복을 입고 다닌다. 그 외 부서 사람들은 보통 스웨덴 직장인처럼 세미 캐주얼 차림이다. IT 관련 일을 하는 부서 사람들은 옷차림이 훨씬 자유롭다. 청년이 입은 와이셔츠 안에 태극기 그림이 보인다. 와이셔츠에 태극기가 그려진 티셔츠를 받쳐 입은 줄 알았는데 다시 보니 가슴에 문신을 한 것이다. 손가락 등에는 건. 곤. 감. 리가 하나씩 새겨있다. 청년은 와이셔츠 깃을 젖혀 보이며 "내 가슴속에 한국 있다"라고 스웨덴어로 말한다.

청년은 어머니는 한국인, 아버지는 스웨덴 사람이고 이곳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대부분의 임직원이 재택근무인데 트레이딩 룸에는 직원들이 사무실에서 일하다 보니 IT 지원부서 직원들도 조를 짜서 사무실에 2-3시간 정도 교대로 근무한다. 매일 출근을 했단다. 칠판에는 그 지원부서 직원들의 이름 옆에는 누가 어떤 날에 몇 시에 치과에 가느라 자리를 비울 예정인지, 출근 시간이 몇 시인지 등의 계획 등이 적혀 있었다. 그 청년 이름 옆에는 문맥에 없이 "Korea no. 1"이라고 쓰여있다. 자기가 쓴 것임이 분명하다. 


서류상 스웨덴 시민이고 우리말을 잘하지 못해도 어머니의 나라와 자신의 출신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쾌활하고 밝은 청년을 보니, 왠지 이성이나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본능적인 유대감이 느껴지며 기분도 좋아지고 나도 힘이 난다.
'한 명이 더 있었구나! 그래. 머릿수가 중요하긴 한데 그것이 전부는 아닌 것 같아... 서류상 국적이 중요한 것도 아니고. 우리가 아직은 수가 적어도 밝은 기운과 이런 기세가 더 중요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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