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음악의 시작
17세기 새로운 음악
17세기 초부터 유럽 음악 양식에서 중요한 변화들이 일어났다. 기존의 르네상스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바로크 시대가 열리기 시작하였으며, 바로크 시대는 대략 17세기 초부터 18세기 중반까지 지속되었다. '바로크'라는 단어는 포르투갈어로 '기괴한' 혹은 '일그러진 진주' 라는 의미인데, 이는 17세기에서 18세기까지의 미술과 건축 양식에 있어서 지나치게 과장된 장식을 폄하할때 사용되는 단어였다. 음악 역시 마찬가지로 '비선율적이며 뭔가 과장된 음악'이라는 뜻으로 '바로크'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지만, 현재는 '바로크 시대'라는 단어가 부정적인 의미보다는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한편 바로크 시대 사람들은 "음악은 인간의 보편적이며 다양한 감정을 표현해야 한다."라는 '감정 이론' (Affektenlehre) 사상을 주장하였는데, 감정 이론은 음악은 선율, 화음, 리듬, 조성, 박자 등의 요소들을 통해 사랑, 분노, 기쁨, 슬픔, 환희 등의 인간의 여러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의미하며, 고대 그리스인들이 가졌던 생각이었던 "음악은 인간 심리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라는 주장과도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감정 이론에서 주장하는 인간의 감정은 개인의 내밀한 감정이라기 보다는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감정을 의미한다.
17세기에는 음악가들의 활동이 활발한 시기이기도 하면서 다양한 분야의 인문학자들의 사교 및 토론 모임 역시 활발하였다. 이탈리아의 피렌체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카메라타 (camerata)라는 모임이 대표적인 바로크 시대의 인문학 모임이었는데, 카메라타 소속의 학자들은 고대 그리스 비극이 갖고 있던 윤리적인 효과에 대해 연구하면서 음악이 가지고 있는 정서적, 이론적, 철학적 역할에 대해 고민하고 탐구하였다. 카메라타 모임의 대표적인 사람들은 갈릴레이 아버지이자 음악이론가였던 빈센초 갈릴레이 (Vincenzo Galilei), 작곡가 카치니 (Giulio Romolo Caccini), 페리 (Jacopo Peri)등이 있었다.
모노디와 바소 콘티누오
기존 르네상스 시대의 복잡한 다성부적 대위법 양식에서 탈피해 바른 낭독에 기초한 독창 선율만이 인간의 감정을 올바르게 표현할 수 있다고 주장했던바로크 음악가들에 의해 '모노디' (monody)라는 새로운 양식이 탄생했다. 모노디 양식을 고안했던 학자들은 고대 그리스 음악이 시의 운율에 맞추어 인간의 감정을 효과적으로 표현하였던 점에 착안하여 시의 리듬과 프레이즈가 유연하고 시의 내용을 효율적으로 표현하였다.
바소 콘티누오 (basso continuo)는 지속 저음이라는 뜻인데 악보에 선율과 숫자가 적힌 베이스 성부만을 적어 놓고 연주자가 나머지 성부를 화음으로 채우는 방식이었다. 베이스의 숫자를 보고 연주자는 화음을 선택하였는데, 예를 들어 베이스 아래에 6이 붙으면 연주자는 제 1전위 (첫째 자리바꿈)으로 연주하였으며, 숫자가 없을 경우에는 기본위치 화음으로 연주하였다. 바소 콘티누오의 사용으로 인해 베이스 선율 위의 음들을 하나의 기능적인 화음으로 간주되었으며 관례적인 베이스 선율의 진행 및 종지와 함께 기존의 음악이 교회 선법위주의 음악에서 조성 중심의 음악으로 변화되었다.
오페라의 탄생
바로크 시대에 탄생했던 최고의 음악 장르는 오페라라고 볼 수 있으며 오페라 (opera)는 작품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오푸스(opus)의 복수형을 뜻한다. 하지만 오페라는 본질적으로 음악이 연속적으로 진행되는 합창과 독창을 포함한 노래, 연극, 대본, 기악 반주가 포함된 종합 음악 예술을 의미하며, 고대 그리스 비극이 가지고 있던 시대정신을 재현하기 위해 탄생하였다. 오페라의 전신은 마드리갈 코미디, 인테르메디오 등이 있는데 이러한 장르들은 일종의 막간극 형식으로서 목동이나 양치기의 전원 생활 혹은 시골의 순박한 사람들의 일상 등이 주된 내용이었으며, 극 안에서 부분적으로 합창 장면이 등장하기도 했으며, 여러 개의 에피소드들을 모아서 하나의 규모가 큰 연극으로 구성되기도 하였다.
최초의 오페라는 카메라타 모임의 작곡가였던 페리의 <다프네> (Dafne)인데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고대 그리스 신화의 내용을 소재로 다룬 작품이었다. 안타깝게도 이 작품은 현존하지는 않고 많은 부분들이 소실되었다. 현존하는 최초의 오페라는 카치니와 페리의 공동 작품인 <에우리디체> (Euridice)인데 메디치가의 결혼식 축제를 위해 작곡된 작품이었다. 결혼식 행사가 끝난 뒤 카치니와 페리는 각각 따로 <에우리디체>를 다시 작곡하였는데 카치니의 작품이 서정적인 선율을 강조한데 비해 페리의 작품은 보다 극적인 측면을 강조하였다. 특히 페리는 그의 <에우리디체>에서 레치타티보라는 새로운 양식을 고안하였는데, 레치타티보는 단순한 숫자 저음 기악 반주의 노래이며, 선율을 강조하기 보다는 가사의 운율에 맞게 낭송하며 극의 스토리를 전개하는 양식이라고 볼 수 있다. 한편 <다프네>와 <에우리디체>의 대본을 쓴 리누치니는 카메라타 모임의 일원이자 인문주의 학자였는데, 그는 그리스 오르페우스 신화를 오페라의 대본으로 완성도 있게 다루었으며 바로크 오페라 양식의 탄생에 있어 큰 공헌을 한 인물이다. 또한 그는 오페라 <오르페우스>에 등장하는 주인공 오르페우스를 원작의 신화보다 훨씬 더 매력적으로 설정함으로서 청중들로 하여금 오페라에 대한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이끌었다.
몬테베르디 (Claudio Monteverdi)
몬테베르디는 르네상스 후기와 바로크 초기를 잇는 대표적인 이탈리아 작곡가이며 바로크 시대의 오페라의 잠재력을 확장시킨 작곡가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인 <오르페오>는 독창, 합창, 서곡, 대규모 오케스트라를 종합적으로 포함하는 최초의 오페라로 간주되고 있다. 음악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몬테베르디는 마드리갈과 오페라에서 특히 극적이며 감정 표현을 탁월하게 구현했으며, 교회 선법보다는 장.단조 조성을 자주 사용하였고, 과감한 전조와 화성 어법을 사용하여 진보적인 음악 스타일을 구축하였다. 특히 그는 오페라에서 아리아와 레치타티보 양식을 명확하게 대조시켰으며, 레치타티보는 단조로운 운문 구성으로 극의 진행을 위해 사용한 반면 아리아는 극적이고 보다 음악적으로 유연하게 흐르는 것이 특징적이다. 즉 아리아의 선율은 대체적으로 화려하면서 독창자의 음악적 기교를 강조하였고 장식 선율을 상세하게 기보하여 자신이 원하는 연주 방식을 독창자에게 구체적으로 제시하였다.
레치타티보와 아리아
아까도 언급했듯이 레치타티보는 오페라에서 이야기를 읊조리듯이 노래하는 부분이며 극의 내용을 설명하기도 하며 선율의 변화가 거의 없는 것이 특징적이다. 하지만 레치타티보는 극의 전개 상황을 설명하는 역할을 담당하였기 때문에 오페라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반면에 아리아는 오페라의 꽃이라고 볼 수 있는데 아리아 부분을 통해 성악가들의 노래 실력을 마음껏 보여줄 수 있으며 절정에 달한 감정을 폭발시킴으로써 청중들에게 음악적인 카타르시스를 선사할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q6Zaesrn7W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