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Small Talk

가족 돌봄이 번아웃 대처법

도망치지 말자. 할 수 있는 만큼만 책임지면 된다

by 윤슬 yunseul

그때 나는 번아웃 상태였다. 뇌경색으로 말을 잃은 아버지는 퇴근할 때마다 나를 붙들고 말했다.

"힘들어, 말이 왜 안 나오지?"


"노력하면 되지" 나는 말했다. 가능한 모든 방법을 알려주었다. 일기 쓰기나 장기두기, 십자말 풀이 등 인지 능력을 높일 수 있는 수많은 방법들을 제시했다.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유튜브를 틀어놓고 포도나 먹어댔다. 그마저도 제대로 치우지 않았다. 초파리가 집에 창궐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가 초파리 연구라도 시작한 줄 알았다.


그러다 어떤 친구와 친해졌다. 그 역시 아픈 어머니를 돌보느라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어머니는 이가 좋지 못했는데, 운 나쁘게 수술 전보다 교합이 더 나빠진 것이다.


맞지 않는 교합으로는 아무것도 제대로 씹을 수 없었다. 억지로 밥을 먹다 보면 두통이 생길 지경이었고, 종일 제대로 먹지 못하니 있는 대로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다.


퇴근하고 돌아가면 어머니는 그를 붙들고 말했다. "오늘은 여기가 안 맞고, 이쪽이 불편해서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었다니까." 그런 말을 몇 달 동안 매일 같이 듣다 보니 나중엔 이야기 도중에 호흡이 가빠오기까지 했다.


"다른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아보면 되잖아요?"

내 질문에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대치로 어깨를 한껏 늘어뜨리더니 딱 한마디 했다.


"기도하겠대요."


그와 친해지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내가 아버지를 돌보느라 회사를 2년이나 휴직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매우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정말 진심 어린 말투로 숨을 내쉬듯 말했다.


"정말 힘들었겠군요!"


이 말 한마디가 내 가슴에 와서 박혔다.


내가 이런 말을 처음 들었냐고? 그렇지 않다.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나의 힘듦을 진심으로 인정해 주었다. 하지만, 달랐다. 나와 같은 상황에 있는 사람에게 받는 '인정'은 그 위로의 깊이가 전혀 달랐다. 그날 이후로, 우리는 절친이 되었다.


한국의 장남과 장녀는 공통점이 많다. 같은 집에 사는 둘째, 셋째보다도 삶이 비슷하다. 마치 커다란 유리 수조에 들어가 있는 삶이라고나 할까?


'잘해야 한다', '모범이 되어야 한다'와 같은 온갖 의무감이 수도를 통해 콸콸 쏟아진다. 물이 목까지 차올라 숨쉬기가 어려워도 참아야 한다. 살려달라고 소리조차 낼 수 없다.


왜냐고?


나만 잘하면 되기 때문에. 나만 참으면 모두가 행복하기 때문이다.


집안의 기둥, 우리의 버팀목. 무심한 아빠로부터 엄마를 지켜주는 구원자.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역할이었다. 가끔은 그 의무감으로부터 도망가고 싶었다. 차라리 지구를 구하는 편이 쉽다고 생각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공통점이 많았다.


그와 유일한 차이점은 책에 대한 관점이었다. 그는 내게 '절대회귀'라는 웹소설을 추천해 줬다. 평소 웹소설을 잘 읽지 않았지만, 그가 추천하니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완전히 빠져들었다.


복수를 위해 시간여행을 한 주인공,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단 한순간도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복수만을 위해 살지 않았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을 소중히 여겼다. 어떤 어려움에서도 유머러스함을 놓치지 않았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사랑했다. 자신의 삶의 행복을 최고로 여겼다.


"어떻게 이런 책을 읽고도 여전히 이러고 살아요?" 나는 그에게 물었다.

"나는 책을 읽는다고 삶이 바뀐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가 말했다.

"왜요? 삶이 바뀌지 않는데 어떻게 책을 읽은 거라고 말할 수 있죠?" 내가 물었다.

"나는 아니에요. 읽으면 그저 재미있을 뿐이에요." 그가 말했다.


그때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시간이 한참 지났다. 그가 여전히 아픈 어머니와 씨름하고 있는 동안, 나는 아픈 아버지를 떠나 내 삶을 시작했다. 물론 아버지가 여전히 신경이 쓰인다. 괜히 어디서 다치시기라도 하면 꼭 내 잘못인 거 같다는 생각도 한다.


그래도 지금은 안다. 그건 아버지가 견뎌야 하는 몫임을. 가족일지라도 내가 그의 모든 인생을 전부 책임져줄 수는 없다는 사실을. 그리고 나에게 그 사실을 알려준 건 내가 읽은 책들이었다.


나에게 책은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 다른 이들의 생각을 살펴볼 수 있는 '비법서'였다. 다른 이의 삶을 통해 내 삶을 객관적으로 돌아보게 만들어주는 '거울'이었다. 비법을 익히고 스스로를 돌아보며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었다. 번아웃이 와도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는 힘을 주었다.


이제야 책에 대한 그의 관점이 이해가 된다. 그에게 책은 비법서도 거울이 아닌, 그저 자신의 현실로부터 도망갈 수 있는 유일한 '도피처'였다.


그가 현실로부터 도망치지 않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가 자신의 행복을 조금 더 소중히 여겼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아니, 차라리 그가 영원히 도망이라도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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