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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잘 될 거라는 이상한 믿음

126일의 파리 교환학생이, 467일의 세계여행이 되기까지

by Jiiin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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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과거 대학생 시절의 일기를 뒤적이다가 ‘머리가 터질 것 같지만 항상 어쨌든 잘 될 거라는 이상한 믿음이 있다’라는 기록을 발견했다. 돌이켜보면 이 태도로 인해 주어진 기회들을 놓치지 않았고, 어려움들을 하나씩 해결하는 과정에서 많은 발전이 있었다. 커다란 두려움조차도 나의 신중한 결심을 꺾을 수 없었던 것 같다.


2) 사실 교환학생을 가기 전 마지막 해외여행은 중학생 때 갔던 가족여행이었다. 동기들이 방학 때 해외여행도 다니고 다양한 대외활동을 통해 경험을 쌓을 때, 나는 학교-도서관-알바-집이라는 단순한 루틴 속에서 소소한 안정을 찾았던 것 같다. 그런데 가보지 못한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더 큰 세상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부딪히며 성장해 보고 싶다는 열망은 점점 커져서 멈출 줄을 몰랐다.


3) 세 번째 수능을 망치고 복학하자마자 인생을 바꿔보겠다는 결심으로, 혼자 교환학생 설명회에 참석하고 토플 시험도 알아봤다. 여름방학 동안 종로의 영어학원에 다니며 여러 지역에서 온 사람들과 스터디를 통해 동기부여를 받고 서로 의지하며 즐겁게 공부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대학입시, 미국 석박사, 교환학생 등 각자의 목표를 모두 달성했다.


4) 지원서를 작성할 때, 당연히 나는 영어권 국가에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미국이나 캐나다에는 내가 원하는 도시나 학교가 없었다. 고민 끝에 마지막 여행지였던 파리가 마음에서 떠나지 않아 1지망으로 자소서에 써서 지원했고, 면접을 봤다. 높은 경쟁률에 불안했지만, 합격 문자를 받은 날 심장이 튀어나올 정도로 기뻤다.


5) 몰아치는 과제와 팀플, 시험들, 동아리 활동, 아르바이트, 계절학기, 교환학생 서류 준비, 프랑스어 과외, 놀고 싶은 욕심에 잡은 무수한 약속들로 몸이 세 네 개여도 모자랄 정도로 바쁜 학기를 보냈다. 성인이 되고 처음으로 해외로 나가는 거라 모르는 것도 너무 많고, 짐을 챙기는 것도 쉽지 않았다. 4개월을 잘 버텨보자며 그렇게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6) 파리에 도착하고 나서 내가 예상했던 대로 흘러간 것은 하나도 없었다. 서툴러서 저지른 실수도 셀 수 없이 많았고, 모두에게 사랑받고 친해지고 싶어 발버둥 치다 상처받기도 했고, 행정 처리와 언어의 장벽에 부딪혀 무력감을 느끼기도 했다. 처음에는 낯선 환경에서 혼자 남는 것도 무서웠고, 여행 자체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7) 그랬던 내가 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 수백 명 넘는 사람들과 소통하게 되었고, 오랫동안 소중한 추억을 함께 간직할 수 있는 친구들도 생겼다. 종강하고 친구들이 너무 그리워 휴학 신청을 하고 일주일 전에 표를 끊어 배낭 하나로 세계여행도 다녀왔다. 18개국 80개 도시에서 나만의 이야기를 남기게 됐다. 4개월짜리 학생비자로 출국했지만, 연장을 거듭해 467일 후에 귀국했다.


8) 이 모든 것은 곁에 있어준 사람들 덕분에 가능했다. 먼저 이 길을 걸어본 선배들과 친구들을 따라 하나하나 새로운 시도를 해봤다. 어휘력보단 서로 자연스럽게 공유하게 된 문화와 진정한 소통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언제나 관계에 있어 진심과 최선을 다했다. 고민이 생길 때마다 주변 사람들에게 솔직한 조언을 구하고 따뜻한 위로를 받았다. 매 순간 처음은 떨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더욱 이 악물고 도전했다.


9) 내게 사람이 전부였던, 그래서 더 빛났던 청춘의 한 장을 함께해 준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아직도 두 번째 학기가 끝나고 친구들이 모두 떠난 텅 빈 기숙사 방에서 혼자 펑펑 울었던 기억이 있다. 너무 컸던 관계와 시간의 밀도 앞에 감정이 무너졌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지금의 나는 하루하루 찾아오는 좋은 사람들과 행운들에 감사하며, 주관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갈 줄 아는 어른이 되었다.


그동안 단단하게 쌓아온 내면으로 인생의 새로운 챕터를 준비하자. 내 또 다른 시작도 응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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