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만은 그 누구보다 풍족했던 파리 교환학생의 일기
오랜만에 낭만 뒤‘진’ 파리지엔느 그지시절 사진들을 보니 (까보니 5,500장 중 예쁜 풍경은 500장에 불과) 우정에 죽고 못 살던(?) 내 풋풋한 어린 시절이 새록새록 기억난다. 이때 고작 1년 반 정도였는데도, 그 시간의 밀도를 과연 미래의 내가 따라잡을 수 있을지 가늠도 안 된다. 마음만은 그 누구보다 풍족했고, 사람때문에 가장 많이 웃고 울던 시기였던 것 같다.
1) 텅 빈 기숙사를 채우려 육군 배낭을 메고 이케아에 갔다가, 버스를 잘못타서 고생하다 침대에서 뻗기도 했다. 처음 블랑제히(빵집)에 들어가, 불어로 크로와상 주문하기에 성공하여 히죽거리며 집에 돌아오기도 했다. 뭐가 뭔지 몰라서, 친구와 함께 익혀 먹어야 하는 음식을 생으로 먹으며 '이것이 낭만이구나' 하고 좋아했던 적도 있었다.
2) 에펠탑이 미니어처처럼 보이는 기숙사 옥상에 올라가기 위해 새벽에 친구들과 합심해 펜스를 넘어가기도 했고, 빨래를 삶아도 될 만큼 큰 냄비에서 친구가 K-양념치킨을 튀기는 것을 보고 요리에 두 눈을 번쩍 뜨기도 했다. 단돈 45유로를 주고 산 프랑스 대 독일 UEFA 경기 직관 티켓으로 “Allez Blu”를 목놓아 외치며 그 이상의 에너지를 받았다.
3) 주3회 이상 기숙사 옆 공원 잔디에 누워 하늘을 보며 “이게 행복이구나”라고 육성으로 뱉어본 적도 있고, 친구들과 밤에 센강의 좁아터진 돌 위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인생에 대해 심각하게 토론하기도 했다. 매주 열리는 파티에 모두 참석하며 몇 달 내내 알코올과 함께 새벽 파리와 친해지기도 했고, 책 '구입만 하기'가 취미인 친구들과 서점 투어를 다니기도 했다.
4) 다양한 음식 문화에 흥미가 생겨 리들과 까르푸(슈퍼마켓)에서 눈 감고도 어느 코너에 어떤 식재료가 있는지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해지기도 했다. 와인 바틀을 물병처럼 들고 다니며 홈파티 때 입장권처럼 들고 가기도 하고, 만사가 귀찮은 날은 기숙사에서 무한 리필 초밥집 파티원을 모아 연어로 배를 채운 뒤 테라스로 돌아와 서로의 꿈을 주제로 대화하기도 했다.
5) 그 사이에 6시간 반씩 연강을 듣고 (올출석) 팀플 발표와 과제,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열심히 챙겼는데 시험이 어려워서 중요한 과목에서 F를 맞아본 적도 있다. (이후에 죽을 힘을 다해 메꾸어 3.9로 졸업…) 방에 전구가 자주 깨져서 혼자 사다가 유튜브를 보며 수리도 해봤고, N번 재방문하며 파리 최고의 맛집은 13구 쌀국수라는 확신도 가졌다.
6) 체류증 행정 처리 때문에 출국 금지 당할까 봐 비오는 날 경시청 앞에서 부족한 불어로 “제발 저 좀 도와달라”고 애처롭게 소리쳐본 적도 있다. 세탁실 갈 때마다 카드를 빌리던 친구가 자기 나라로 돌아가니 이상하게 공허해서 눈물이 나기도 했고, 한 학기가 지나고 보니 24/7 울리던 단톡방에 우리 얼굴로 수백 개의 밈이 생기기도 했다.
7) 한 학기만 보내고 돌아가는 친구들과 시크릿 산타를 하고 헤어질 때 서로의 진심 가득한 편지를 읽고 F든 T든 모두 오열하기도 했고, 기숙사에 남은 생존자들과 (처음 보는 애들 다수) 쓰레기장에서 나온 나무에 파인애플로 장식해 이상한 크리스마스를 보냈고, 개선문 카운트다운에 갔다가 문닫힌 메트로역 옆으로 질레존(시위대)과 나란히 걸으며 귀가하기도 했다.
어쩌면 사회의 냉혹함을 뼈저리게 느낀 후에도, 이 기억들을 통해 감정에 솔직하고 인간관계에 진심을 다할 수 있는 원동력이 생긴 것 같다. 이젠 더 잔잔한 삶을 살더라도, 내 사람들과는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서로를 응원해주며 함께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는 작은 욕심이랄까. 내 곁에 있어주시는 소중한 분들께 항상 고맙다. 쭉 행복하고 재밌는 추억을 많이 만들어야 겠다.
People come in and out of your life. For a time they are your world; they are everything and then one day they’re not. There‘s no telling how long you will have them ne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