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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대교에 두고 온 나만의 이야기들

23년 동안 행복과 위로를 준 나만의 특별한 장소

by Jiiin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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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에게도 행복과 위로를 주는 ‘특별한 장소’가 있나요?


2001년에 이 동네로 이사를 왔습니다. 제 인생에서 산책과 음악은 필수불가결한 생명수 같은 것이라, 한강 없이는 일상을 설명하지 못할 겁니다. 기쁜 일이든 슬픈 일이든, 줄 이어폰이든 에어팟이든 항상 마포대교와 함께였습니다.


(골절인이 되기 전까지) 살짝 열린 창문 틈 사이로 아름다운 일몰이 보이면, 모자와 러닝화로 무장하고 곧바로 뛰어나가기도 했습니다. 사진도 실컷 찍고 사연들도 잔뜩 남기고 온, 제가 서울에서 가장 애정하는 장소입니다.

19살, 가끔 야자를 째고 친구와 낭만을 즐기러 마포대교로 왔습니다. 시키는 대로 공부했지만, 언제나 미래 생각으로 가득했던 시기였습니다. 석식 대신 스페셜 떡볶이를 먹고, 마포대교를 걸으며 난간에 몸을 기대어 우리의 얼토당토않은 꿈에 대해 즐겁게 떠들었습니다.


20살, 막 성인이 된 어린 저는 재수가 인생에서 가장 힘든 일인 것으로 착각했습니다. 의지가 꺾일 때마다 귀신같이 포스트잇에 시를 써주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활자가 쓰여있던 마포대교 전광판을 하나하나 보며 걸었습니다. 언제나 글과 줄 이어폰이 함께했습니다.


21살, 새내기가 되고 상반기 모든 과 행사에 참여하며 적극적으로 살았습니다. 하반기에는 노량진에서 삼각김밥을 먹으며 독기를 품고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법도 배웠습니다. 답답할 때마다 집에 가지 않고 한강을 맴돌았습니다. 노래를 들을 때 가사가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22살, 너무 치열하게 도전했는지, 실패를 받아들이기 어려워 복학하고 마음이 많이 힘들었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려면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바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습니다. 방학에는 교환학생 준비를 하며 스터디 사람들과 청계천을 더 많이 갔습니다.


23살, 프랑스 출국 전에 여러 활동을 하며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단순히 스쳐 지나가는 인맥이 아닌, 오래갈 소중한 인연들이 생겨 감사했습니다. 제 이야기를 신나게 하다 보니 친구들이 저만 보면 마포대교를 떠올리길래, 우리 동네로 자주 초대했습니다.


24살, 길고도 짧았던 해외 생활을 마치고 12월 초에 귀국했습니다. 서울을 궁금해하는 친구들에게 예쁜 풍경을 찍어 보여줄 수 있다는 생각에 들떠서, 눈이 펑펑 오거나 선명한 일몰이 보이는 날이면 한강에 가서 다리 근처를 다 돌며 사진을 찍어 올렸습니다.


25살, 전공 가득한 막학년에 코X나 시기까지 겹치며 몸도 마음도 고생했던 일 년을 보냈습니다. 외출은 마스크 쓰고 가는 마포대교가 거의 전부였습니다. 듣는 것도 공부라며, 크든 작든 모든 미팅에 저를 데려가 주셨던 팀장님 밑에서 열정적인 인턴 생활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26살, 제대로 된 첫 번째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마포대교에서 자주 울었다는 건 재미로 하는 과장이고, 사실 이때만 그랬습니다. 매서운 바람과 천둥번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작정 걸었습니다. 의자에 비스듬히 누워 밤하늘을 보며 감정 정리를 했습니다. 그리고 헬스장으로...


27살, 타인의 눈치를 보다가 나를 잃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부터 ‘싫으면 말고’라는 다섯 글자를 되뇌며, 솔직한 제 감정을 말로 내뱉지 않게 됐습니다. 그래도 최선을 다한 사람은 절대 후회가 없다는 사실을 가슴으로 알았습니다. 영원한 건 없을 수도 있다고 배웠습니다.


28살, 회사에서 처음 겪어보는 자리에 너무 외롭고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사회의 냉혹함을 빨리 깨달은 편이라 그런지, 감정보단 분석에 집중했습니다. 오늘 상황에 대해 좋았던 점과 아쉬웠던 부분을 돌아보며, 다음부터는 발전된 모습이 될 수 있도록 생각 정리를 했습니다.


29살, 수술하고 무려 28일 동안 밖에 못 나갔습니다. 그 후 제일 처음 목발을 짚고 찾은 곳이 한강이었습니다. 행복이 이런 거구나 진심으로 느꼈습니다. 어렵게 내디딘 한 걸음도, 무섭게 내리쬐는 햇살도 제 즐거움을 이길 수는 없었습니다. 이제 장마가 끝나서 다행입니다!


지금은 한창 30살을 채워가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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