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 어린 축하 한마디가 결국 나에게도 돌아오는 기쁨이 되기를
얼마 전에 '미트프로이데(Mitfreude)'라는 단어를 알게 됐다. 독일어 'Mit(함께)'와 'Freude(기쁨)'가 합쳐진 말인데, 타인에게 좋은 일이 있을 때 진심으로 함께 기뻐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1) 니체가 한 말이라 해서 출처가 궁금했는데, 인공지능도 모른다 해서 구글링을 해보니 사전에도 없는 말이었다. 실제로 있는 다른 독일어 단어인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의 반대 개념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샤덴프로이데는 'Schaden(피해)'하고 'Freude(기쁨)'가 합쳐진 걸로, 남의 불행이나 고통에서 기쁨을 느끼는 것이다. 어쩌면 둘 다 인간의 복잡한 감정을 정확히 포착한 것 같기도 하다.
2) 저번 주에 동네를 산책하다가 우연히 어린이 플리마켓을 들렀다. 그날은 왠지 모르게 에너지가 느껴져서 멈춰 서서 마술쇼를 구경했다. 평소랑 좀 달랐는지, 아이들이 웃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이 포근해졌다. 나는 솔직히 남이 망했으면 좋겠다거나 불행했으면 좋겠다고 바란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친구들이 잘 될수록 내가 더 작아지는 기분이 자주 들어서 힘들어한 시기는 있었다.
3) 대학교 4학년 때 특히 심했던 것 같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는데도, 주변 친구들에 비해 너무 평범하고 스펙이 부족해 보인다고 자주 풀 죽어있었다. 친구들의 좋은 소식들을 진심으로 축하해 줘야 하는데, 나만 대기업 인턴과 해외 석사 합격증이 없냐면서 자책만 했다. 지금 와서 보니 웃긴 건, 그때 그렇게 부러워했던 것들이 간절히 원했던 게 아니라 그냥 있어 보이고 싶어서 그랬다는 점이다.
4) 노량진에서 잠깐 수험생활을 해봤을 때, 플래너에 ‘개썅 마이웨이’라고 써놓고 겉으로는 괜찮은 척했지만 남의 점수와 비교하며 속앓이를 했던 게 떠오르기도… 근데 이상하게도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이리저리 부딪히다 보니, 점점 나와 남은 다르다는 걸 받아들이게 됐다. 100명이 있으면 100개의 인생이 있고, 누구는 빨리 가고 누구는 천천히 가도 다 각자의 이야기가 있더라.
5) 그러다 보니, 주변에 나를 진심으로 응원해 주고 작은 성취에도 함께 기뻐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보이기 시작했다. 이런 감사함이 하나씩 쌓이면 나 자신부터 천천히 변화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친구들 소식을 들으면, 비교보다는 그동안의 값진 노력들이 먼저 떠오른다. 행복은 강도보다 빈도라더니, 작은 기쁨들이 쌓일수록 내 행복도 조금씩 커지지 않을지 기대하게 된다.
6) 살면서 샤덴프로이데를 피할 수는 없겠지만, 미트프로이데의 빈도를 늘려보고 싶다. 상대방의 기쁨에 진심으로 공감하고 함께 웃을 수 있는 순간들이 쌓일수록, 비교의 굴레에서 벗어나 나의 작은 행복도 온전히 누리게 되지 않을까? 타인의 행복이 늘어날수록 내 행복도 자연스레 커질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오늘 누군가에게 건네는 진심 어린 축하 한마디가,
결국 나에게도 돌아오는 기쁨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