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가 로마에게, 로마가 그리스에게> 전시 후기
1)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가 늘 하얗지만은 않았다는 연구 결과가 있었다고 한다. 고고학자들은 백색의 대리석 아래 숨겨진 화려한 색채의 흔적을 발견해 냈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모습은, 사실은 시간이 만들어낸 착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잃어버린 색채를 떠올리니 본래의 아크로폴리스가 어떤 빛깔을 띠고 있었을지 궁금해졌다.
2) 그리스의 철학과 로마의 질서가 만난 순간도 비슷하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서로 다른 물감이 섞이면서 새로운 색이 만들어지듯이, 그리스의 지혜는 로마에서 다른 모습으로 피어났다. 아크로폴리스의 기둥들이 시간에 따라 본래의 색을 점점 잃어간 것처럼, 두 문화가 만나면서 무언가는 새롭게 태어나고 다른 무언가는 희미해졌을 것이다.
3) 신화를 공유하면서 거대한 두 문화는 하나로 묶일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그리스의 철학은 평화와 안정이라는 이름으로 점차 물들기도 했을 것이다. 아테네에서 피어난 사유들은 로마를 거치면서 조금씩 본래의 빛깔과 달라지기도 했다. 철학은 과연 본질을 간직한 채 남아 있었을까, 아니면 질서를 위한 또 다른 수단으로 존재했던 걸까?
4) 대리석 기둥에 남아 있는 희미한 안료처럼, 흰색 한 가지라 믿었던 것 아래에는 어쩌면 다채로운 빛깔이 숨 쉬고 있을지도 모른다. 알록달록한 아크로폴리스는 과거의 기억 속에만 머무르지 않고, 지금도 은은하게 빛나며 새로운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
아크로폴리스의 본래 색채처럼,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