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간의 치고 박고 싸움을 극도로 싫어하는 나는 엄마의 공간에 있으면 그 싸움에 오히려 몰입하게 된다. 심지어 내 일도 아니고 엄마와 관련된 일이다. 하지만 그 공간에서 벗어나 내 집에 도착하고 나면 어느 순간 한 걸음 물러서서 3자의 입장으로 바라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 사람의 공간에서는 그 사람의 공간으로 사고하게 되고 행동하게 되는 그런 마력이 있는 것. 어쩌면 당연하기도 하다. 몇 백 시간을 아니 몇 만 시간을 그 한 사람이 고민하고 들여놓은 물건들로 쓸모들이 정해진 공간은 오로지 그 사람을 위해 만들어졌으니까. 그럼 타인의 공간에서조차 자기의 모습으로 살아있는 사람들은 뭘까. 눈치가 없는 둔한 사람일까. 아니 그건 아닐 것이다. 똑같은 사람이고 감각이 살아있다면 그럴 수 없다. 그것은 알면서도 외면하는 것이다. 분명 그 사람의 아우라와 의미, 생각들을 모두 느끼지만 모른 채 하고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건 일반적인 상황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것보다 훨씬 고집스럽다. 왜냐하면 엄연하게 느껴지고 있는 이 분위기를 거스르는 거니까. 어떻게든 내가 돋보일 수 있도록 아주 강력하게 힘을 쓰고 있는거니까.
타인의 공간, 권위, 분위기, 재력, 능력 그 모든 것들에 쉽게 압도당했다. 그리고 그 순간이 지난 후 후회만 남았다. 왜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을 더 하지 못하고 왔을까. 왜 내 장점을 보여주지 못하고 그들이 말하는 것들에 하염없이 고개만 끄덕이며 바보같은 앵무새 역할을 하고 왔을까. 그리고 자신을 비난했다. 나는 무능한 사람이라고. 다른 이들에게 쉽게 져주고 게임을 피하고 나를 드러내지도 못하는 인간이라고. 하지만 그건 과도기였다. 나에게 과도기가 조금 길었던 것 뿐이다. 나는 타인의 공간을 배려하고 있는 것이었다. 원래는 그들의 영역을 존중하려 했던 것이었지만 아직 어렸던 나는 조절에 실패하여 자신을 너무 낮추다 못해 없애버린 것이다. 하지만 몇몇 좋은 사람들은 나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었고 그러면서 점차 나는 정도를 찾아가며 중간점을 찾아가게 되었다. 그 이후에는 타인의 공간을 배려하면서 나 자신이 서있는 공간 반경 2m 정도(?)는 만든다. 그들의 공간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내가 나로서 서있을 수는 있도록. 그들이 자신의 영역에 나를 초대했다는 것은 내가 들어갈 자리를 만들어줬다는 것이고, 그 자리만큼은 나만의 것으로 채워도 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 공간의 모든 것들을 내가 원하는 대로 바꾸려고 하고 나를 남기려고 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은 인생에 타인이 없다. 다른 사람은 공간을 만들 주제조차 되지 못하고 오로지 나만이 그것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곳에도 내가 손을 대야 비로소 완성이 되고 더 나아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타인을 쉽게 무시하고 경시한다.
공간이란 그런 것이다. 나의 공간을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을 용서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